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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생활기록/슬기로운 독일생활

시간은 집중하는만큼 늘어난다

by 도이치아재 2026. 10. 14.

하루가 딱 2시간만 더 있어서 26시간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자꾸 든다. 하고 싶은 것, 해내고 싶은 것, 또 해야만 하는 일들이 많아서 하루가 조금만 더 길었으면 하는 날들의 연속이다.

슬기가 원하는 일 할 수 있게 밑바탕 만드는 일, 애들 둘 학교랑 방과 후 활동 챙기기, 회사 일에 개인 작업까지 쳐내는 일, 거기에 슬기랑 내 건강 챙기고 밥 잘 챙겨 먹고 잠자는 것까지.

매일 반복되는 이 루틴만 쳐내도 하루가 순식간에 사라진다. 특히 지난 3주는 그 빡셈이 최고조였다. 한국의 작은 설계공모에도 참가해, 어찌어찌 마무리는 했다. 마감 주엔 수면시간이 3시간 안팎이었고, 결국 제출 전날엔 밤을 꼬박 새우고 나서야 간신히 끝낼 수 있었다. 회사를 다니면서 개인 프로젝트를 굴린다는 게 결코 쉽지 않구나. 이렇게 계속할 순 없을 테니, 지속 가능한 방법을 좀 고민해 봐야 할 때인 것 같다.

시간이 워낙 모자라다 보니 1분 1초를 쥐어짜듯 집중해야 했다. 회사 업무 시간, 애들이랑 보내는 시간, 최소한의 집안일 시간을 빼고 나면 내가 쓸 수 있는 절대적인 시간 자체가 없었다. 밤 9시, 10시는 넘어야 겨우 뭐라도 끄적일 틈이 났으니까.

차 몰고 오면서 머릿속으로 시뮬레이션 돌리고, 엘턴 아벤트 가선 짬짬이 스케치하고, 점심시간엔 책 뒤적거리면서 아이디어를 찾았다. 진짜 요 몇 주는 1초도 허투루 안 쓴 것 같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그렇게 시간을 쪼개 쓰니까 오히려 하루가 길게 늘어나는 기분이 들었다.

몸이 지쳐갈수록 설계안은 정돈되고 다듬어졌다. 정말 오랜만에 설계에만 온전히 미쳐있던 짧은 시간이었다. 이렇게 재미있게 설계했던 게 대체 언제였더라. 건축가들은 참 이래서 구제불능이다. 남들은 알아주지도 않는 가치에 목숨 걸고 달려드니 말이다. 나도 별수 없는 거 보면, 천생 가난한 건축가 체질이 맞긴 한가 보다. 달리기로 틈틈이 쌓은 체력이 드디어 빛을 발하는구나. 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