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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생활기록/슬기로운 독일생활

첫 마라톤 완주. 처절했던 42.195km.

by 도이치아재 2026. 9. 29.

42.195km /// 이 글은 나의 첫 마라톤의 처절했던 기록이다.

올해 슈투트가르트 Lauf가 끝나고, 다음은 마라톤 풀코스에 도전해볼 생각으로 호기롭게 울름 마라톤을 신청했다. 그리고 본격적인 훈련에 들어갔다. 100일정도 남겨둔 시점부터 매일같이 달렸던 것 같다. 시간이 나질 않으니, 새벽에 일어나서 달렸다. 월간 마일리지는 자연스럽게 높아져 150km를 넘어 어느 새 300km까지 달성했다. 드디어 월간 마일리지 300km를 달성했구나 하며 기뻐하는 찰나. 오른쪽 장경인대에 통증이 느껴졌다. 의욕이 앞섰던 탓이었을까. 부상이 찾아왔다. 첫 마라톤을 40일 앞둔 시점부터 정식 훈련은 진행할 수 없었다.

일주일을 쉬었는데도 우측 장경인대 통증에 불편감이 가시질 않았다. 시간은 흘렀고 마일리지는 점점 줄어, 주당 15km까지 줄어들었다. 운동이라고는 주말 러닝크루와 가이드런 정도가 전부였다. 준비가 되지않은 채 풀코스 출발선에 선 것이다. 목표했던 3시간 30분은 고사하고, 4시간 이내로만 들어오자라는 생각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계획은 이랬다. 10km 까지는 5분 20~25초 사이로 천천히 달리자. 10km가 넘어가는 순간부터 30km까지 5분 10초~15초로 속도를 올려 어떻게든 버티자. 30km부터 결승선까지 5분 30초로만 밀어도 4시간 안에 들어올 수 있다.

누구나 계획은 있다. 쳐맞기 전까지는 말이다.

하프까지는 아주 산뜻했다. 도파민이 터져서 응원해주는 사람들과 하이파이브도 하고, 소리도 지르면서 신나게 달렸다. 25km까지도 괜찮았다. 28km가 되자 다리가 안움직이기 시작했다.

"어? 이상하다."

정말 몸은 정직했다. 훈련에서 달렸던 최장거리인 28km가 되자,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심장은 멀쩡했다. 다리가 말썽이었다. 오른쪽 허벅지 앞쪽부터 쥐가 올라왔다. 숨은 차지 않았기 때문에 속도는 올릴 수 있었는데, 그러면 허벅지 앞쪽 근육이 뭉치는 게 느껴졌다. 얼마지나지 않아 오른쪽 햄스트링도 쥐가 올라와 쩔뚝거리며 달려야만 했다. 30km를 지나는 시점이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왼쪽다리도 말을 듣지 않았다. 운동을 좋아하는 나인데도, 이렇게 몸이 한계에 몰아부쳐지는 상황은 처음이었다. 직접 겪어보니 깨닫게 되었다. 왜 마라톤이 30km부터 시작인건지.

30km 이후부터는 뛰다 서다를 반복했다. 중간 중간 스트레칭을 해야만 했다. 안그러면 앞으로 나아갈 수 없었다. 편했던 러닝화에서도 통증이 올라왔다. 발을 조여오는 신발끈 하나 하나가 고통처럼 느껴졌다. 응원존을 지날 때도 달리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했다. 그 때 맥주병을 든 아저씨의 응원소리가 들려왔다.

"문출!!!! Auf geht !!!!"

내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아저씨가 내 번호표에 써있는 이름을 보고 응원해주었다. 또 힘내서 달렸다. 그리고 이내 다시 멈췄다. 그 때마다 뒤에서 달려오는 러너들이 등을 토닥여주며 "los geht's" 라며 힘을 주기도 했다. 그럼 또 힘이나서 달렸다. 40km까지 그렇게 달리다 서다, 스트레칭하다를 반복했다.

40km 표지판이 보였다. 그 이후부터는 좀처럼 거리가 줄어들지 않는 느낌이 들었다. 시계에 페이스는 8분이 찍혔다. 사실상 빠르게 걷는 속도와 차이가 없었다. 41km가 되고, 드디어 울름 대성당이 눈앞에 보이기 시작했다. 결승선까지는 완만한 오르막이었다. 양쪽 발을 더 밀기가 힘들었다. 땅을 박차고 나가려 할 때마다 허벅지부터 종아리 근육까지 비명을 질렀다.

준비가 되지 않은 마라토너가 겪어야만하는 고통은 상상 이상이었다. 슬기와 아이들이 있는 결승선만 생각하면서 달렸다. 당장 다리가 풀려도 이상하지 않았을 정도였다. 오르막을 오르면서 다리가 풀려 넘어질지언정, 그래도 멈추지 말고 가보자라며 다독이며 달렸다. 그렇게 처절하게 결승선을 통과했다. 4시간 25분이 걸렸다.

첫 마라톤 완주였다. 처절했지만 다음엔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생은 마라톤이라고 했던가. 정말 그런 것 같다. 요행없이 남들과 비교하지 않고 나만의 속도로, 온전히 내 두 다리로 무언가를 해낼 때 의미가 생기는것 같다. 그 지점에서 인생과 꼭 닮았다. 의미있었던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