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운 겨울이 지나고, 드디어 달리기 딱 좋은 봄이 왔다. 아들 신우와 나는 여전히 사이좋게 달리고 있다. 겨울 동안은 추운 날씨에 잠시 주춤하기도 했지만, 날씨가 풀리니 이제는 주 3회씩 거르지 않고 공원을 찾는다.
우리 부자의 달리기에는 나름의 체계적인 프로그램이 있다.
- 첫 번째: 3km를 숨이 헐떡일 정도의 속도로 달리기
- 두 번째: 5km를 대화가 가능할 만큼 편안한 속도로 달리기
- 세 번째: 1.5km를 전력에 가까운 속도로 달리기
본의 아니게 템포런-롱런-인터벌의 형태가 반복되다 보니, 아이의 달리기 실력도 자연스레 늘고 재미도 붙인 모양이다.
어제는 달리는데 비가 살짝 내렸다. 아들은 비가 더 쏟아져서 몸이 흠뻑 젖은 채로 달리고 싶다고 했다. 그러면 더 자유로울 것 같다는 말도 덧붙였다. 이 녀석, 어느새 마음가짐만큼은 '진짜 러너'가 다 됐다.

무엇보다 아들의 마인드가 변하고 있다는 점이 반갑다. 몸이 힘들면 필연적으로 부정적인 생각이 들기 마련이다. 그럴 때 스스로 중심을 잡고 의식적으로 긍정적인 면을 바라보면 많은 것이 달라지는데, 나는 이 회복탄력성을 아이에게 가르쳐주고 싶었다. 사실 달리기만큼 이를 몸소 체득하기 좋은 방법도 없다.
어제는 첫째와 함께 5km를 달렸다. 2.5km 지점은 한창 오르막을 오르는 구간이라 꽤 힘들었을 텐데, 아이가 불쑥 입을 뗐다. "와, 벌써 2.5km나 왔네?" 예전 같았으면 "이제 겨우 반밖에 안 왔어?"라고 투덜댔을 녀석인데 참 기특했다. 본인도 스스로의 변화가 느껴졌는지 한마디 더 거든다. "아빠, 나 지금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중이야. 진짜 생각보다 금방 왔어. 이제 반밖에 안 남았잖아!"
독일어 표현 중에도 **'Halb voll? oder Halb leer?'**라는 말이 있다. 잔에 담긴 물을 보고 "반이나 차 있네"라고 할지, "반밖에 없네"라고 할지 묻는 말이다. 관점의 차이가 삶의 태도를 결정한다는 의미다. 우리 아들이 같은 상황에서도 이왕이면 긍정적인 면을 먼저 발견하는 사람이 되길 바란다. 그리고 그 힘이 러닝을 통해 단단히 뿌리 내리길 바라는 마음이다.
러닝을 마치고 샤워를 할 때면 아이의 콧노래 소리가 들려온다. 기분이 아주 좋다는 신호다. 그러고 나면 시키지 않아도 집안일과 할 일들을 척척 해낸다. 도파민과 세로토닌의 마법인지, 운동 전후의 적극성이 눈에 띄게 다르다. 워낙 성격이 복잡하지 않고 순수한 녀석이라 효과가 더 즉각적인 것 같기도 하다.
함께 달릴 아들이 있다는 것, 그리고 그런 녀석과 오롯이 시간을 보낼 수 있다는 것. 이 모든 게 참 감사하다. 덕분에 나는 진짜 행복한 사람이라는 걸 다시금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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