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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생활기록/슬기로운 독일생활

선택적 함구증? 언어치료사 vs 유치원선생

by 도이치아재 2025. 8. 1.

오래 전 썼던 ‘유치원의 나르시시스트’ 시리즈를 기억하는 사람은 없겠지만, 오늘은 그 연장선이다.

둘째는 선택적 함구증 증상을 보인다. 처음 보는 사람 앞에선 입 꾹 다물고, 분위기가 낯설거나 불편하면 입을 더 꾹 다문다. 반대로, 자기가 편하다고 느끼는 사람 앞에선 신나게 말한다. 문제는 유치원이 이걸 ‘말 안 하려는 아이’로 본다는 거다.  우리는 ‘말 못 하게 만드는 분위기’가 문제라고 생각하는데, 그쪽은 ‘애가 애초에 소통할 마음이 없음’이라고 결론을 내려놨다. 아주 단정적으로.

심지어 이런 말도 했다.
“저희는 다 해봤어요. 근데 아이가 책상 밑에 들어가 있거나, 말을 안 해요.”
무슨 ‘다’를 해봤는지 모르겠지만, 참 편한 결론이다. 친구들과도 신나게 말만 잘하는구만.

유치원의 사회성 부족인것 같다는 의견서 덕분에 언어치료를 시작했다. 첫날부터 둘째는 치료사 선생님이랑 말을 했다. 처음 보는 사람이랑. 그 순간 알았다. 이건 아이의 문제가 아니구나. ‘말할 기회’와 ‘말하고 싶어질 분위기’를 누가 만들어주느냐의 문제다.

한 달쯤 지나서 치료사 선생님이 제안했다.
“유치원 선생님과 부모가 같이 모여서 이야기해보는 게 좋겠어요.”

그래서 그 유치원 선생님과, 우리 부부, 그리고 치료사 선생님이 한 자리에 모였다.

“신아는 유치원에서 어떤가요?” 치료사 선생님이 물었다.
선생님은 여전히 단단했다.
“다양한 제안을 했지만, 신아는 책상 밑에 들어가 있거나 말을 하지 않아요. 약간 나아지긴 했지만 여전히 소통을 거부하고 있어요.”

치료사 선생님이 다시 물었다. “신아가 유치원에 얼마나 다녔죠?”
“2년 넘었어요. 2년 넘게 말을 안 해요.”

이쯤에서 치료사 선생님이 말을 이었다.
“근데 저는 첫 만남부터 잘 대화하고 있어요. 발달 테스트도 문제 없었고요. ‘소통 거부’라는 의견은 저로선 조금 이해가 안 가요.”

그 순간, 유치원 선생님의 표정이 딱 굳었다. 그리고 치료사 선생님이 조심스레 덧붙였다.
“신아는 유치원에서도 말하고 싶어해요. 근데 그 말이 목에 걸려 있는 거예요. 그걸 꺼낼 수 있게 도와주는 환경이 필요해요. 유치원에선 어떤 시도를 해보셨나요?”

그 선생님은 이렇게 대답했다.
“우리는 아이한테 ‘이거 할래?’, ‘저거 할래?’ 물어봐요. 근데 아이는 대답을 안 해요. 저희는 아이한테 최대한 맞춰주고 있는데, 이렇게 안 하면 방법이 없잖아요?”

치료사 선생님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수줍은 아이들은 그렇게 ‘열린 질문’에 대답 잘 안 해요. 예를 들어 숫자놀이하다가 선생님이 일부러 틀리게 말하는 거예요. 그러면 아이가 웃으면서 고쳐줘요. ‘도와줘~’ 하면서 잘 못하는 걸 보여주면, 아이가 마음을 열고 말을 꺼내요. 그런 식의 시도가 필요해요.”

그렇게 상담은 끝났다. 밖으로 나와 어색하게 복도에 셋이 서 있었는데, 선생님이 먼저 말을 꺼냈다.
“저는 잠깐 화장실 좀 다녀올게요. 먼저 가세요.”

뻔했다. 어색함을 못 견딘 회피였다. 우리는 그냥 먼저 나왔다.

차에 앉았는데, 건너편에서 그녀가 나오는 게 보였다. 누군가랑 통화 중이었다. 손을 휘휘 저어가며 열변을 토하고 있었다.
뭐가 그렇게 억울했을까. 누가 봐도 무언가에 분노하고 있는 얼굴이었다.

그때 마음속에 들었던 생각 하나. 그렇게 억울할 거면, 제대로 좀 하지 그랬어.

 

 

독일 유치원의 나르시시스트 1편

유치원의 왕선생님이 퇴직하시고, 그 자리에 새로 들어온 선생님 A와 처음으로 상담하는 자리를 가졌었다. (이 A선생님이 유치원에 오면서 그녀의 아이도 같이 유치원에 들어왔다.) A선생님은 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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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유치원의 나르시시스트 2편

독일 유치원의 나르시시스트 1편유치원의 왕선생님이 퇴직하시고, 그 자리에 새로 들어온 선생님 A와 처음으로 상담하는 자리를 가졌었다. (이 A선생님이 유치원에 오면서 그녀의 아이도 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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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유치원의 나르시시스트 3편

독일 유치원의 나르시시스트 2편독일 유치원의 나르시시스트 1편유치원의 왕선생님이 퇴직하시고, 그 자리에 새로 들어온 선생님 A와 처음으로 상담하는 자리를 가졌었다. (이 A선생님이 유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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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유치원의 나르시시스트 4편 완결

독일 유치원의 나르시시스트 3편독일 유치원의 나르시시스트 2편독일 유치원의 나르시시스트 1편유치원의 왕선생님이 퇴직하시고, 그 자리에 새로 들어온 선생님 A와 처음으로 상담하는 자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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