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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생활기록/독일 교육에 관하여

독일 유치원에서 말을 안하는 아이

by 도이치아재 2024. 3. 18.

얼마 전 키타에서 학부모 상담이 있었고, 역시나 걱정 한아름을 안고 집으로 돌아왔다.

이번 학무보 상담에서 가장 큰 테마는 둘째의 독일어였다. 이제 만 4세, 유치원을 다닌지 어느 덧 2년이나 다 되어가는데 아직 키타에서 말을 잘 안한다고 한다. 성격은 다소 내성적이지만 집에서는 똑소리나게 말도 잘하고, 소리지르며 뛰어다니는데 유치원에서는 다른 친구들에게 먼저 놀자고 다가가지도 않는다고 한다.(다행인 건 같이 놀자고 다가오는 아이들을 내쫓진 않는단다) 또 자기 툭 치고 가거나 신아가 생각하는 영역에 누가 허락없이 들어오면 울어버리거나 다른 곳으로 피해버린다고 한다. 우리 둘째는 키타에서 엄마와 헤어질 때도 눈을 껌뻑껌뻑하면서 "츄스~(안녕~)"도 안할때가 많은데, 선생님은 신아의 행동을 보고 사회성에 결여가 있는 것 같다는 말을 무려 A4 3장에 걸쳐서 빼곡히 작성한 서류까지 주셨다. 상담은 "가정에서, 키타에서 함께 신아를 도와줄 일이 있다면 협력해서 해보자 !" 라며 마무리 되었는데, 키타 밖으로 나오는 와이프와 나의 발걸음은 무거웠다.

또 이런 걱정을 해야하는구나...

첫째 신우도 독일어에 대한 우려깊은 시선을 한 몸에 받았었다. 키타에서도 그랬고, 초등학교 입학 전 검사에서도 그랬다. 유치원을 다닌 기간대비 독일어가 부족하다는 말을 들었었고, 심지어는 1년 더 키타를 다니고 학교에 입학해야 할수도 있다고도 했었다. 로고패디(언어교정치료)도 1년 간 열심히 다니기도 했다. 4학년인 지금은 독일어로 글쓰는데 어려움이 있긴해도 전반적인 학교생활에 독일어가 큰 걸림돌이 되진 않는다. 오히려 독일인 아이들보다 독일어 시험도 더 잘볼 때가 많다.

한국어를 모국어로 쓰면서 해외에 산다는 건 그런 것 같다. 부족한 독일어를 주변(키타나 학교 등)에서 많이 걱정해준다. 그 걱정은 부모에게 때론 내가 독일어를 아이에게 가르치지 않아서 그런 것 아닐까라는 잘못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내가 아이에게 한국어보다 독일어로 더 많은 이야기를 해줬다면 아이가 좀 더 독일어를 빨리 내 뱉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그럼 결과도 조금이나마 달라지지 않았을까. 아이가 키타를 다닌지 2년이나 됐는데 독일어를 거의 내뱉지 않는다라는 피드백을 받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렇게 하는 게 어쩌면 독일사회에 더 맞는 방식일지도 모르겠다.

독일에서 나고 자란 아이가 한국어도 모국어 수준으로 잘하고, 독일 학교에서도 늘 상위권을 유지하는 아이는 정말 매우 드물다. 아이가 원래 타고난 재능이 있거나, 부모가 알게 모르게 꾸준히 노력을 했음이 틀림없다. 아니면 둘 다 거나.

우리 부부는 아이가 한글을 모국어 수준으로 읽고 쓰고 말하는 한국어-독일어 이중언어 구사자로 자랐으면 한다. 그래서 책도 학교 들어가기 전까지 독일어 책보다는 한국어 책을 읽힌다. 첫째 아이에게 한국어 책이 아닌, 독일어 책을 더 많이 봐야한다고 닥달한게 3학년에 들어가서 부터였다. 지금도 첫째는 독일어보다는 한글책을 훨씬 더 선호하는데... 남들이 볼 때는 어쩌면 욕심일지도 모르겠다.

엄마가 신아에게 키타에서 왜 독일어를 쓰지 않냐고 물어봤다. 신아는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했다. 이런 엄마 아빠의 고민을 저녁을 먹으며 신우와 함께 이야기를 했다. 그랬더니 첫째 신우가 한가지 제안을 했다.

그럼 매일 저녁 8시~8시 30분까지 신아를 위해 우리 모두 독일어만 쓰자 !

그 이후로 우리 가족은 매일 30분씩 신아가 독일어로 말하고 있다. 그 동안 들은 게 있어서 그런지 제법 독일어로 말을 할 줄 안다. 조금이라도 꾸준히 하다보면 신아도 차츰 키타에서 용기내어 독일어로 조금씩 말을 내뱉지 않을까. 꾸준히 계속 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