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에 건축가가 고딕성당을 지을 때, 얼마나 높이까지 벽돌을 쌓을 수 있을지 고민이 많았다고 한다. 당시에는 구조 계산을 하는 프로그램도 없고, 숫자로 정확하게 계산하기도 힘들어서 경험에 의해서만 건물을 쌓아올렸는데, 우리가 보는 모든 고딕성당이 그렇게 지어진 것이다.
'벽돌을 한 100개쯤 위로 쌓았더니 무너져서, 그 밑에 작업하던 뮐러씨가 크게 다쳤었지.'
'그럼 이번에는 벽돌을 한 80개쯤 쌓은 다음에 옆에 구조적으로 받쳐줄만한 뭔가를 둬야겠구나'
'옆에 구조물을 대면 조금 더 높이 쌓을 수 있네? 그럼 조금 더 높이 쌓아볼까?'
'어? 옆에 구조물이 있어도 높이 쌓는데는 한계가 있구나. 그럼 더 이상 높이 짓기는 힘들겠다.'
이렇게 작은 경험들이 모여서 우리가 보는 고딕성당의 높이와 모양이 완성된 것이다. 그래서 더 크고 높은 고딕성당이 지어질수록, 그 도시의 위상과 건설기술을 자랑하는 지표가 됐대나 뭐라나.
계획설계팀에서 실시설계 팀으로 옮긴지 어느 덧 1년이 다 되어간다. 실시설계를 하다보니, 꼭 옛날 고딕성당을 짓던 일꾼 중 한명이 된 것 같아서 제목을 저렇게 써봤다.
실시설계 건축가에게는 경험이 곧 능력이다. 이런 관점에서 나는 아직 능력있는(?) 건축가는 아니다. 실시설계에서는 건물을 설계하는 건축가의 경험이 풍부할수록 건물의 퀄리티는 높아지고 하자와 비용은 줄어든다. 디테일에 대한 기본적인 건축적 지식뿐만 아니라, 실제로 그 디테일을 시공해서 아무런 문제 없었는지에 대한 경험이 바로 경쟁력이 된다. 이 경쟁력은 책으로 공부해서는 쌓을 수 없고, 그려보고 지어보면서만 쌓을 수 있는 영역인 것 같다.
그래서 나는 실시설계에 능통한 건축가가 있느냐 없느냐가 그 설계사무소의 설계 퀄리티를 좌우한다고 개인적으로 생각한다. 실시설계에 대해 물어볼만한 경험있는 건축가가 없다는 것이 지금 내가 일하는 설계사무실에서 아쉬운 부분이기도 하다. 혼자서 협력업체 붙들고 치고박고 깨지며 배울 수도 있다. 근데 만약 내 사수가 실시설계에 능통한 건축가라면 ? 그의 경험을 빌려 10시간 걸릴 일을 3분만에도 끝낼 수 있고, 보너스로 더 많은 부분을 배울 수 있다.
맺음말을 어떻게 써야할지 모르겠다. 그냥 혼자서 이렇게 치고박고 하다보니, 한국에서 내 옆에 든든하게 서 계셨던 선배님이 갑자기 그리워진다. 그 분께 혼나기도 많이 혼나고, 덕분에 많이 성장도 했는데... ㅎㅎㅎ 연락이라도 드려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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