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달은 블로그에 거의 신경을 못썼던 것 같은데, 요즘들어 글을 쓸만한 소재들이 하나씩 튀어나오는 것 같다. 오늘은 연봉협상과 관련한 글이다. 어제 회사와 두번째 연봉 협상이 있었다. 다행히 어느정도 만족할만한 성과를 낸 것 같아 기분이 좋다. 이직을 할까 고민도 했었는데, 당분간은 다니는 걸로 ㅋㅋㅋㅋㅋ 이번 협상으로 엔지니어분들 연봉의 발끝 정도는 닿은 것 같다.
건축가는 한국에서나 독일에서나 타 직군에 비해 연봉이 많이 낮은 편인데,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학과별 시간 당 수당 테이블에 따르면 건축은 저~~ 밑 쪽에 있다. (진로선택이 이렇게나 중요하다!!) 반면 의학, 경영학, 공학은 전부 위에 자리한다. 건축학은 전문대학(FH)을 졸업했는지, 대학교(Uni)를 졸업했는지에 따라 조금 차이가 나긴하지만, 두 학위 모두 낮기 때문에 도토리 기재기 정도 수준의 차이다. 독일의 건축가 연봉수준은 한국으로 치면 공부원보다 낮고, 사회복지사 보다는 높은 수준이라 생각하면 확 와닿을 것이다. 연봉은 낮지만,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수준은 비교적 높다. 연봉과 사회적 인식의 괴리가 상당히 차이나는... 이상한 직종이지만, 현재 독일의 부족직군 중 하나기 때문에 취업은 수월한 편이다.
독일에서 건축하시는 분들 모두 화이팅! 하시고, 본론으로 들어가야겠다.
회사마다 다르지만, 우리회사는 직원이 직접 대표님께 월급을 올려달라고 말하는 분위기라서... 연봉협상을 위해 일주일 전에 대표님과 약속을 잡았다. 독일의 대기업이나 큰 설계사무소 같은 경우에는 해마다 월급의 비율이 테이블로 정해져있어서 굳이 협상을 하지 않아도 자동으로 오르는 곳도 있고, 회사 운영진이 매년 직원을 불러서 협의 하는 경우도 있다는데... 우리 회사는 직접 손들고 말해야한다. (그런 탓에 8년째 연봉협상을 안하는 직원도 있다. 왜 안하는지 모르겠지만...)
"나 월급 올려주세요." 라고 말하는게 처음에는 입에서 잘 안떨어졌는데, 지금은 그게 이들의 문화라고 생각하니 그리 어렵지도 않은 것 같다. 어쨌든 지난 1년간 회사에 대해서, 또 내 일에 대해서, 내 월급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자리가 시작됐다. 대표님과 파트너급 임원, 그리고 내가 함께 이야기했다.
잠깐의 어색한 침묵과 가벼운 농담이 오고간 후, 먼저 내가 운을 띄웠다.
"(나) 연봉에 대해 말하기 전에, 제가 일하는 거에 만족하시는 지 먼저 묻고 싶었어요."
"(대표) 우리는 네가 우리와 함께 일하는 게 너무나 기쁘고, 네 업무방식에 매우 만족하고 있어."
"(파트너) 나는 사실 네가 공모전을 해나가는 게 아주 인상깊었어. 지금은 실시설계 쪽에서 열심히 하고 있다는 걸 아주 잘 알고 있어. 두 업무가 다른데 너는 어떤 걸 더 선호하니?"
"(나) 나는 두 분야 다 장, 단점이 있다고 생각하는데... 블라블라... 그래도 건축가로서 건물이 완성될 때까지의 프로세스는 끝까지 경험하는 게 좋을 것 같아요."
그 밖에도 업무환경, 회사가 개선해야할 점 들을 사실대로 다 말했다. 그 다음으로는 가장 중요한 테마인 연봉에 대해 말을 이어갔다.
"(대표) 그래서 어느정도의 연봉을 생각하고 있어?"
이번엔 지난 연봉협상 때보다 훨씬 더 쎈 금액을 부를 생각이었기 때문에, 내가 지금까지 해온 성과와 내 업무능력에 대한 미사여구를 많이 붙였다.
"(나) .... 음.... 이러이러 해서 한달에 XXX 유로는 더 받으면 좋을 것 같아요."
"(대표) 아 그래? 그럼 XXX 유로를 더 올리는 걸로하지! 인상된 월급은 당장 이번달 부터 적용해서 주도록 할게 !"
참... 놀랍게도 내가 제시한 연봉보다 더 많은 금액을 회사에서 제시했다.(더 쎄게 불렀어야하나....ㅋㅋㅋ) 사실... 밑져야 본전이라는 생각으로... 충분히 많이 불렀기 때문에, 더 적은 금액으로 협상할 것을 예상하고 다음 시나리오를 준비중이었다. 예상치 못한 제안에 기분은 좋았지만, 더 당황한 쪽은 나였다. 다행히 마스크를 쓰고 망정이지, 관리가 안되는 표정이 다 보여졌으면 그것 또한 민망했을터...
"하하.... 좋... 좋네요. 적은 것보다는 많은 게 낫죠 !"
그래봐야 월급쟁이지만, 업무에 있어서 내 가치를 인정받고 그에 합당한 댓가를 받는 것은 기쁜 일이다. 연봉협상을 마치고 커피한잔 들고 잠깐 밖에 나와 처음 든 생각이... '이제 우리 애들한테 뭐라도 더 해줄 수 있겠구나...' 였다. 그리고 다음으로 든 생각이 '우리 와이프 용돈 올려줘야겠다.' 그리고는 '돈이 좋긴 좋구나. 재태크 더 열심히해서 꼭 부자가 되고 말겠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ㅋㅋㅋ
다음 주부터 우리의 늦은 휴가가 시작되는데, 맘 편하게 휴가를 다녀올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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