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건축가로 일하는 건 쉽지만, 건축사 타이틀을 달고 일하기 위해선 반드시 건축사 시험을 통과해야한다. 반면 독일에서는 취업 후에 건축사 협회에 등록을 해서, 2년간 Architekt im Praktikum(이하 AiP) 과정을 거치면 자동으로 독일 건축사 자격이 주어진다. 독일에서 건축사가 되는 건 한국보다 오히려 더 쉽다. 그냥 주어진 일을 묵묵히 하다보면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자격증 정도인 것이다.
지금까지 난 이 건축사협회에 등록하는 걸 미뤄왔다. 협회에서는 취업을 하자마자 등록하는 걸 권고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개인의 자유이다. 일을 시작하고 몇 년 후에 건축사사무소를 차릴 계획이라면 바로 등록해야하는 것이 맞지만, 그럴 계획이 없다면 굳이 당장 등록할 필요가 없다. 동료들 중에서도 협회에 돈내기 아깝다며 계속 미루고 있는 친구도 있고, 등록만 하고 세미나 비용이 비싸서 듣지 않는 동료도 있다. 협회에 등록을 하면, 안그래도 짜디 짠 건축설계 바닥 연봉에서 협회 관련 비용들(협회 등록비, 세미나 참가비, 연회비 등등)을 매년 지불해야 한다.
또 난 이곳에서 학위를 받은 사람이 아니기에, 내 졸업증명서와 성적증명서를 독일어 번역공증을 받은 후에 그 원본을 복사해 사본공증을 한번 더 받아서 협회에 제출해야한다. 이게 끝이 아니다. 협회에서는 내가 제출한 독일어 번역+한국어 원문의 성적 및 졸업증명서를 받으면, 학력 인증 과정을 통해 내 학위가 독일의 학위와 동등한지를 확인해야 한다.(이게 ZAB 인증과정인데 협회에서 메일 온 것에 따르면 이 과정이 몇 개월 걸릴 수도 있다고 한다. 그 종이 몇 장을 무슨 몇 달씩이나 보는건지 참 ㅋㅋㅋ) 뭐 이런 일련의 정~말 귀찮은 과정들때문에, 당장은 필요없는 독일 건축사 타이틀을 차일피일 미루다가 나도 이제는 신청하려고 한다.
이유는 간단했다. 회사의 교육 지원 정책이 변경되었기 때문이다. 이번에 회사에서 협회에 등록 후, 수강해야 하는 세미나 과목 등에 대한 교육비를 전부 지불해주기로 결정했다. 그래서 올타쿠나! 싶어 이번기회에 귀찮더라도 그냥 등록을 하기로 했다.
난 한국에서 3년의 경력이 있으니, 그걸 증명한다면 별도의 기간없이 바로 독일 건축사 타이틀을 받을 여지도 있다고 협회에서 말해주었다. 여기서 고민이 하나 있다. 회사에서는 협회에 등록 후 2년까지만 교육비를 지원해준다. 이 말은 내가 바로 한국의 경력을 인정받아 독일 건축사 자격을 따게 되버리면 교육비를 지원받지 못한다는 말이다.
타이틀을 얻자니, 교육비용을 내가 다 감당해야하고... 또 교육비용 혜택을 받자니, 2년이라는 시간을 기다려야 한다. 근데 또 당장 건축사 타이틀을 갖고 있어도 어디 써먹을데가 없으니, 그냥 2년동안 교육혜택을 받는 편이 더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어찌됐든 인증된 독일어 번역가님께 졸업 및 성적증명서를 번역공증을 받아서, 드디어 회사 근처에 암트에가서 사본공증까지 받아왔다. 코로나 때문에 암트 방문도 미리미리 예약을 해서 가야했다. 이제 협회에 보낸 후, 그 다음 단계를 진행하면 된다.
휴, 번거로운 일 하나가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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