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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가의 시선/독일에서 건축하기

[건축]#16. 독일 육아휴직 끝, 좋은 시간 끝 ㅜㅜ

by 도이치아재 2020. 8. 6.

평소와 다를 것 없었던 어제 오후, 왠 낮선 번호로 전화한통이 울렸다. 전화를 받으니 회사 대표님이었다. 간단히 잘 지냈냐는 말과 함께, 혹시 일을 좀 더 일찍 시작할 수 있냐고 물었다. 그리곤 나와 내일이나 모레 쯤 이것에 대해 회의를 하고 싶다고 하신다.

"모레는 약속이 있어서 안되구요, 내일 오전에 괜찮을 것 같습니다."

오늘 대표님과 회의를 끝내고, 집에 오자마자 이렇게 글을 쓴다. 반년만에 회사에 간다고 생각하니, 설레기도 하고 (독일어로 회의를 오랜만에 하는 터라...) 약간 긴장도 됐다. 예전과 마찬가지로 회사 로비에서 회사 대표님과 팀장(우리 팀장 아님)이 선채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리곤 나를 보더니 손을 들며 인사한다.

"할로! 잠깐 10분만!"
"전 그럼 동료들과 이야기 나누고 있을게요."

그렇게 회사를 돌며, 오랜만에 만난 직장동료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 중 대표님이 나에게 이제 끝났다는 제스처를 보낸다. 대표님과 팀장, 그리고 나는 회의실로 향했다. 그리곤 사회적 거리를 유지하고, 마스크를 착용했다. 팀장이 코로나 때문에 새로생긴 회사규칙을 간단히 설명해주었다.

"이제 우리도 회의할 때는 항상 마스크를 끼고 해. 창문도 열어놓고..."

그렇게 이야기가 시작됐다. 이 회의가 1시간 넘게 진행됐다. 잘지냈냐는 질문과 함께 지금까지 회사에 있었던 일들, 또 내가 어떻게 지냈는지에 대한 질문들이 오고 갔다. 아참, 이번 코로나 사태를 한국이 너무 잘 막은 것 같다는 이야기도 했다. 그리곤 자연스럽게 일적인 내용으로 회의가 진행됐다.

"언제부터 일할 수 있겠어? 그리고 일주일에 몇 시간정도 일을 하는 게 괜찮을 것 같아?"

대표님이 물었다.

"다음주는 일정이 있어서 힘들겠고, 다다음주 월요일부터는 일을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리고 휴직 전 처럼 40시간 일을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단, 월요일은 오후 2시까지(로고패디 때문에...), 그리고 수요일은 오후 3시에(태권도 때문에...) 퇴근해야 합니다. 대신 나머지 화, 목, 금요일은 1시간 씩 더 일해서 주 40시간을 맞출 수 있어요."

"음... 좋군. 완벽해. 난 사실 너가 20시간 정도만 일할 수 있다고 말할까봐, 조금 걱정했거든..."

"(농담) 20시간만 할까요?"

"아니아니, 40시간으로 결정하도록 하자. 하하하. 완벽하군. (팀장을 보며) 그렇지?"

팀장이 고개를 끄덕인다. 그렇게 일을 시작할 날짜와 노동 시간을 합의하고, 복귀하면 진행하게 될 프로젝트에 대해 간략한 이야기를 들었다. 내가 관여해야할 프로젝트는 대략 2개가 될 것 같다. 그것에 대해서는 다시 출근하면 자세히 회의할 예정이다. 그리고 이제 내가 질문할 차례였다. 흐흐.

"그럼 제가 지금까지 명확하게 알지못했던 것 두가지만 질문할께요. 첫번째는 작년 초과근무에 대한 보상에 관한 것이에요. 육아 휴직하기 전까지 다른 동료들보다 많이 야근을 해서... 이게 어떻게 처리 되는지 아직 답변을 받지 못한 상태입니다."

"그건 나도 알지. 꽤 많이 야근했지... 대략 야근을 얼마나했지?"

"최소 매달 20시간 정도...? (웃으며)이건 최소에요.ㅎㅎㅎ"

그러더니 대표님이 팀장에서 고개를 끄덕이며 눈빛을 보낸다. 그러더니 팀장이 이야기 한다.

"그럼 니가 다시 출근하는 첫 날, 우리 같이 데이터보면서 산정해보자."

"그래, 좋아. 확실하게 하는 편이 좋을 것 같아."

그렇게 첫번째 질문에 대한 결론이 내려지고, 다음 두번째 질문을 했다.

"제가 아직 연봉과 관련된 어떤 면담이나 내용을 누구에게 들어본 적이 없어서 그러는데, 우리 회사에서는 얼마나 자주 연봉에 관련해서 면담을 하나요?"

이번엔 대표님이 말한다.

"음... 아마도, Jedes Jahr.(매년) 음, 그래 우리 매년 연봉과 관련된 이야기를 하네, Herr 초이가 여기서 일한지 얼마나 됐지?"

"2018년 9월부터 일했으니까... 1년이 넘었는데, 아직 한번도 면담을 하지 못했어요.(도대체 뭐야, 먼저 말 안하면 쓱 입닦는거냣)"

대표님이 고개를 길게 끄덕인다. 사실 대표님하고 나는 밤 늦게까지 일한 시간이 꽤나 있어서 이분은 내가 어떻게 일하는지, 어떤 퀄리티로 일하는지 잘 알고있는 분이다. 그러더니 나에게 지금 받고 있는 연봉을 물으셔서 대답했다.

"세금 포함해서 매달 XXXX 유로요."

그러더니 또 고개를 길게 끄덕인다. ㅋㅋㅋ 이씨 ㅋㅋㅋ 대표님이 생각하기에도 불합리하죠? ㅎㅎㅎ 결론적으로는 다시 첫 출근하는 날 나와 함께 모든걸 뒤 돌아보기로 했다. 연봉이나, 근무시간, 그리고 작년에 했던 초과시간들까지 모두.

어쨌든 오늘은 처음으로 회사에 내가 할말을 속시원히 다~ 말했다. 돈 얘기는 말하기가 좀 불편할 수 있어서 꺼려지긴 했지만, 와이프가 꼭! 연봉에 대해 얘기하라고 해서 했는데... 역시 와이프말대로 지르길 잘한 것 같다. 무엇보다 휴직기간 동안, 독일어 공부를 조금씩이라도 한 덕인지 말이 술술술 나와... 나도 놀라고, 팀장도 놀라고, 대표님도 놀랐다... 덕분에 연봉이나 초과근무수당 같은 민감한 얘기도 막힘없이 했고... 몇 몇 수준있는 어휘들 빼고는 거의 모든 걸 알아들은 것 같다. 독일어가 늘었음을 다시 한번 실감했다랄까...

갑자기 이렇게... 육아휴직의 끝이 보인다. 남은 일주일, 와이프와 애들과 불태워야겠다.
와이프... 일찍 복귀해서 미안해... 돈 벌어서 맛있는거 먹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