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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가의 시선/독일에서 건축하기

[건축]#8. 혼자서 프로젝트 진행하기

by 도이치아재 2019. 5. 12.

나는 이 회사에서 현상설계에 주로 참여하고 있다. 음, 그러니까 건축설계 과정을 전체로 볼 때, '건축계획'(건물의 외관, 콘셉트, 디자인, 면적, 아주 개략적인 공사비 등)에 해당하는 단계의 일들을 하고 있고, 이번에 마감한 프로젝트부터 혼자서 진행하고 있다. 어려운 점이라면, 콘셉트 단계에서 아이디어들을 독일어로 설명해야 하는데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그래서 조금 더 많은 이미지들을 만들어가서 보여줘야 한다. 가끔은 철학적인, 가끔은 논리적인 이야기를 해야 하는데 내 독일어 수준은 딱 회화(?) 정도의 수준인지라....ㅜㅜ

사장님. 입맛에 맞춰 고르세요.
회의 끝. 흡사 전쟁터. 어쨌든 디자인 방향이 결정됨.
폐기처리된 다른 대안들

각설하고, 이번 공모 대상은 Bodensee 라는 아주 멋진 호수 옆에 위치한 Pflegeheim(요양원)이었다. 나와 함께 일하는 팀원들이 더 이상 없기 때문에 처음부터 끝까지 혼자서 해야 했다. 오히려 그래서 더 편했다.

일단 팀원들을 챙길 필요도 없고,
(내가 볼 때 정말 말도 안 되는...) 아이디어를 들어줄 필요도 없고, 따로
업무를 분담할 필요도 없고,
내가 업무계획을 짜서, 집에가고 싶을 때 가면 된다.

또 이번 프로젝트는 내 방식으로 업무를 해나갔다. 하나 여기 회사의 업무방식과 다른 것이 있다면, 대안 선정 시 이번부터 스터디 모형을 적극 활용했다.(사실... 너무나도 당연한 것 아닌가?) 하지만 이전까지는 (말도 안 되게...) 대지 안에 건물체적이 어느 정도 되는지 확인하는 용도로만 이용했었다. 스터디 모델은 스터디 모델답게 이용해야지... 으이그... 덕분에 건물의 형태를 무사히 결정할 수 있었다.

이번 프로젝트는 대략 7주 정도 진행을 했고, 마감일 전 이틀 정도 다른 직원들의 도움을 받았다. 팀장은 일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정도만 체크했고, 콘셉트 단계부터 계획까지 모두 스스로 진행한 점이 스스로의 성과라면 성과인 것 같다.(이후 당선이 될지 안될지는 모르겠지만...) 물론 혼자서 끝까지 할 수 있었지만, 제출 마지막 시간까지 변경이 있어서 어쩔 수 없이 다른 사람의 손을 빌려야 했다. (도대체 왜 마지막까지 변경을 하는지... 도저히 납득을 할 순 없지만... 이건 정말 문제다.)

요양원에는 약 300명의 식사를 책임질 주방이 포함되어있고, 규모도 작진 않다. 그런데... 도대체 왜 마감날 아침... 주방설계 전문가를 초빙하여 모든 주방 평면을 고쳐야 하는 것이며, 코어(엘리베이터와 계단)가 변경되어야 하는 건지 정말 도저히 납득을 할 수 없다. 코어변경은 모든 층에 영향을 주는 너무 큰 변경 사항이기에 팀장에게 말해서 그대로 놔두는 걸로 합의했다.

팀장이 얘기했다.
"사람들이 입구로 들어오면 계단으로 바로 진입할 수가 없으니, 엘레베이터 하나를 없애서 바로 진입할 수 있게 하자."
"헉. 진심임? 내 생각엔 그냥 여기 벽만 터주면 될 것 같은데... 엘리베이터를 하나 없애면 윗층에도 없어진 엘레베이터 면적이 애매해지고, 주출입구엔 적어도 2개의 엘리베이터는 있어야 해."

막판에 설계변경을 하는 건, 사장님 하나만으로도 벅찬데... 왜 너까지 그러니... 마감할 시간도 없는데, 회의를 언제하고 있니... 참... 답답한 노릇이군.

팀장은 내 이야기를 듣고는 자신의 생각에 확신이 차지 않았는지 다른 팀장을 불러왔다.
"내 생각은 이렇고, Choi 생각은 이런데 너 생각은 어때?"
"그냥 벽만 터주면 되겠는데? 입구에 엘리베이터는 무조건 2개는 있어야 해. 이 정도 되는 규모에 주출입구 쪽 엘리베이터가 하나밖에 없으면 카오스가 될껄."
"결정!"

-_- 결정할 일도 아닌 걸 결정하고 앉아있다. 참.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마감을 향해 달리며, 야근중. 야근은 좋지 않지만... 어쩔 수 없다.

폭풍이 몰아치듯 이번 설계 프로젝트도 끝났다. 다음 주는 내내 제출할 모형에 달라붙어 있을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