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회사를 다녔을 때 직장동기 형이 어느 날 갑자기 런닝을 시작했을 때가 생각난다. 학생시절부터 연애를 해오다가 취업 후에 충격적인 이유로 헤어졌던 그 형은 그 날 이후로 거의 매일 런닝을 했다. 몇 분 뛰기만해도 숨이 가뿐데 '저렇게 뛰는 걸 보니 미치도록 힘들긴 한가보다...'라고 나는 그냥 막연히 생각했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해보면 형은 부서진 자신을 일으키고, 새로운 인생을 준비하기 위한 몸부림을 한 것이 아니었나싶다. 지금 그 형은 풀코스 마라톤을 달리고 긍정적인 인생을 살고있다.
러너들은 왜 지루하고 힘든 런닝을 계속 뛸까? 라고 생각했던 내가 런닝을 하고있다. 본격적으로 시작한 것은 올해 초부터였다. 새해가 됐을 때 뭔가 인생을 바꿀만한 변화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 이후부터 달렸다. 처음 뛰었을 때 아마 1.8km 인가를 달렸었는데, 남들이 보기에는 달리는 건지 걷는건지 구분하기 힘든 속도로 달렸을거다. 2키로도 안되는 거리를 뛰고나서 숨쉬기 힘들정도로 너무 힘들었고, 입에서는 오랜만에 심장이 피를 펌프질 한 탓인지 피냄새가 가시질 않았다. 내가 이렇게 나약했구나라고 느꼈다.
런닝을 시작하고 6개월 정도 됐을 무렵, 회사가 있는 Vaihingen부터 슈투트가르트 시내 우리 집까지 10km 정도를 뛰었던 적이 있다. 그 때 거의 매일 5km 정도를 뛰고있었을 때였는데, 퇴근하는데 그냥 집에 뛰어가고 싶은 생각이 들어서 가방에 있던 운동복으로 갈아입고 냅다 뛰었다. 평소에 타고 다니던 U반을 따라 뛰니 집까지 1시간 20분정도 걸렸던 것 같다. 그리고 집에 도착하자마자 와이프에게 욕을 엄청먹었는데도 기분이 매우 좋았던 기억이 있다.
그리고 얼마전 여름 휴가 후 첫 런닝에서 다시 10km를 달렸다. 2주 가까이 뛰지 않았기에 혹시나 체력이 떨어졌을까봐 걱정이 었지만, 다행히 이전과 큰 차이를 못느꼈다. 집 앞 슐로스가르텐을 크게 한바퀴돌면 7km, 그리고 반홉 옆 공원을 두바퀴 더 뛰면 딱 10km가 된다. 이번에는 1시간 5분이 걸렸다. 이제 10km도 마음만 먹으면 1시간 안에 뛸 수 있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 런닝을 시작했을 때 10km는 고사하고 3km를 힘들지 않게 뛰었으면 좋겠다라고 생각했던 적 있다. 그런데 이제 어느새 10km 뛸 수 있는 체력을 갖게 되었고, 15km, 20km 까지도 바라 볼 수 있게 되었다. 무언가 한 단계 넘어가는 듯한 기분 좋은 느낌이다. 몸도 마음가짐도, 멘탈도 이전보다 더 단단해진 느낌이 든다. 인생에도 한단 계 넘어가는 그런 지점이 있다면 지금이지 않을까? 더 화이팅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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