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내 블로그 인기글들은 거진 '건축 포트폴리오'에 관한 글들이 차지하고 있다. 아마 곧 한국 설계사무소의 공채시즌이 다가오기 때문이라고 조심스레 예상해본다. 그래서 이번엔 번외편으로 건축설계를 전공한 사람이 취업을 할 때, 반드시 선택해야만 하는 갈림길 두가지에 대해 짧게 이야기해 보려고 한다. 이 선택이 향후 여러분 5년정도의 미래를 좌우할지도 모른다. 이 글은 본인의 경험을 바탕으로한 글이니, 참고하실분은 참고하시고 그러지 않으실 분은 가볍게 읽으셔도 좋을 것 같다.
난 한국에서 5년제 학사를 졸업하고, 국내 대학원에 진학하였다. 대학원 재학 당시에는 1년 정도 지도교수님의 아뜰리에 사무실에서 일과 학업을 병행하였다. 대학원 졸업 후, S사 계열 대형 설계사무소에 공채로 입사하여 3년 조금 넘는 기간동안 일하다 퇴직 후, 독일에서 건축설계를 여전히 업으로 삼고 있다. 어쩌다 아뜰리에와 대형 설계사무소의 경험을 모두 가지고 있다 보니, 이런 글까지 쓰게 되었다.
대형 설계사무소에 입사를 하면, 회사에 대한 자부심으로 어깨에 잔뜩 힘이 들어간다. 복지는 물론이고, 분기별+명절 보너스, 업계에서 알아주는 연봉 등으로 한껏 회사뽕이 차오른다. 서류부터 면접까지 빡센 바늘구멍을 통과해 입사를 했기 때문에 어느 기간 정도는 대기업 뽕으로 회사 생활을 하게된다. 그런데 내가 느낀 대형 설계사무소의 장점은 이런 것들보다 함께 일하는 사람에 있다. 치열한 경쟁률을 뚫고 들어온 사람들이라 그런지 (그렇지 않은 분들도 있지만) 정말 인간적으로 본 받을 만한 사람들이 많다. 어떤 사람은 일적인 면에서, 어떤 사람은 인간적인 면에서, 또 어떤 사람은 인생 전반에 대해 배울만한 좋은 사람들이 곁에 있을 가능성이 크다. 나 역시 퇴사 후에도, 연락을 이어가는 지인들이 꽤나 많다. 반면 단점도 있다. 알게 모르게 작용하는 학연과 지연, 일정 직급 이상으로 올라가면 생각나는 '난 지금껏 뭐했나', '승진 누락에 따른 퇴직의 압박감', 사회 분위기에 따라 한번씩 찾아오는 '희망 퇴직' 등등... 하지만 건축을 하면서 부모님께 간간히 용돈도 드리고 휴가 때 해외여행도 다닐정도의 여력을 갖게 된다.
작은 아뜰리에는 또 다르다. 완전 다르다. 어느 정도 체계가 잡혀있고, 역사가 깊은 아뜰리에는 그래도 조금 나은 편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아뜰리에는 부당한 휴가나 야근비 등 노동에 대한 기본권이 침해되는 곳이 상당수다. 내가 대형 설계사무소를 선택했던 이유도 일한만큼 보상을 받고 싶은 마음이 컸었다. 그래도 건축 하나만 보고, 평이 괜찮은 아뜰리에 사무실에서 일을 할 수 있다면 정말 소중한 경험을 많이 하게 된다. 계획부터 완공에 이르기까지 같은 연차에 대형 사무실 건축가보다 훨씬 많은 노하우를 쌓게 된다. 건축가는 결국 경험을 바탕으로 일하는 직업이기 때문에 이러한 면에서는 아뜰리에가 가진 장점을 부인할 수 없다. 아뜰리에는 작은 조직이다 보니, 본인의 능력이 뛰어나다면 언제든 그 능력을 쉽게 드러낼 수도 있다는 것도 장점일 수 있겠다.
졸업을 하고, 5년이라는 시간이 넘게 흘렀다. 대형 설계사에 함께 입사했던 내 동기들 대부분은 여전히 회사를 다니고 있다. 때가 되면 어김없이 나오는 보너스, 두둑한 월급, 대기업과 같은 수준의 복지는 달콤하지만 건축가로서 독립하기 힘든 테두리를 만드는 것 같기도 하다. 반면, 아뜰리에에서 고생 꽤나 했던 친구들은 천천히 자기 이름을 건 회사를 낼 준비를 하고 있는 친구들도 더러 있다.
분명한 것은 대형 사무소다니는 친구들은 '건축'을 통해 천천히 자기 길을 만들어가는 아뜰리에 다니는 이들을 부러워한다. 반면 아뜰리에 다니는 친구들은 높은 연봉과 좋은 복지를 누리고 있는 대형 사무소에 다니는 이들을 부러워한다. 결국 남의 떡이 커보이는 것 같다.
대형 사무소냐, 아뜰리에냐... 어떤 선택을 하든 이 블로그를 찾아오는 모든 건축인들을 응원한다. 그리고 지금부터 연말까지 이어질 채용과정에서 좋은 소식을 많이 받으셨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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