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을 하고 집에 돌아오니, 와이프가 부엌에서 뭔가 하나를 꺼내든다. 스테인레스로 된 새로운 텀블러였다. 예전에 나의 찌그러진 오래된 텀블러를 보더니 "텀블러 바꿀 때 됐다!" 라고 했던 말이 불현듯 떠오른다. 새 텀블러를 꺼내서 이리저리 훑어본다. 그리고는 이내 와이프에게 물었다.
"내가 쓰던 텀블러는 어디있어?"
"아마 재활용 봉지에 넣어놨을꺼야~"
그렇게 뒤적뒤적 낡은 텀블러를 찾아 기념촬영을 하고나서야 기분 좋게 버릴 수 있었다. 이 찌그러진 텀블러는 내가 신입사원으로 입사하고 회사 선배들에게 입사 축하 선물로 받은 내 생애 첫 번째 텀블러였다. 그것도 아주 고급진 (무려) 스타벅스 텀블러였다. 그렇게 2014년부터 쭉~ 이 텀블러 하나만 사용했으니 꽤나 긴 시간 나와 함께했다.
독일행을 결정하고, 잊지 않고 챙겼던 것 중 하나가 바로 이 텀블러였다. 성공적(?)인 사회 생활을 이것과 함께 시작했으니, 독일에서도 잘 시작하자는 의미를 되새기며 가방에 넣었던 것 같다. 하도 오래쓴 탓에 찌그러지기도 하고, 이젠 지우려고해도 잘 지워지지 않은 커피 때(?)가 군데군데 껴서 어디 내다놔도 가져가지 못할 비주얼을 하고 있지만, 그래도 아주 유용하게 잘 썼다.
이 텀블러에 담아둔 커피 덕분에 졸음이 와도 독일어를 조금이라도 더 공부할 수 있었고, 여기에서 다시 일을 시작하고 나서는 커피한잔의 여유도 가질 수 있었다. 늘 좋은 스타트를 함께해주었던 낡은 텀블러를 미련없이 버리고 나니, 비로소 독일에서의 생활도 잘 시작했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또 잘 부탁한다. 새로운 텀블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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