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에서 직장인으로 보낸 첫 한달이 지났다. 직장인으로서 한달을 꽉 채운 퇴근길. U반에 몸을 실었다. 내가 앉을 자리가 있나 한번 스윽 훑어본다. 내가 앉을 자리는 잘 보이는데, 나처럼 생긴 동양인은 보이질 않는다. 내가 몸을 실은 지하철 칸에 익숙한 것이라곤 나라는 존재 밖에 없다. 1년이 조금 넘는 시간동안, 내 주변의 모든 것이 바뀌었다. 문화도, 사람도, 언어도, 날씨도. 이렇게 다른 세상에서 잘 지내고 있으니, 스스로 대견하기까지 하다.
한국에서 직장을 다녔던 시간만큼이나 나에게 소중한 시간은 또 없었다. 많은 야근과 무거운 압박감이 늘 존재했지만, 그곳은 아마도 내 인생에서 다시 없을지도 모르는 초 엘리트 집단이었다. 덕분에 가정적인 아빠로 살아간다는 건 포기할 수 밖에 없었다. 어쨌거나 인간적으로 본 받을 사람들을 많이 만났고, 외국에서 일을 하고 싶다고 생각하게 된 계기 중 하나이기도 했다. 돌아보면 난 정말 운이 억세게 좋은 사람이었다.
내가 속했던 팀에는 늘 유학을 다녀온 사람이 있었다. 미국, 프랑스, 독일, 영국, 네덜란드 등 외국에서 꽤나 유명한 학교를 졸업한 수재들이 많았다. 평상시에 업무를 보다보면 내 건너편, 또 옆팀의 선배들은 해외에서 걸려오는 전화 때문에 늘 영어로 전화를 받았다. 어릴 적부터 해외에서 살다와 영어와 한국어가 모두 편한 바이링구어들었다. 이런 집단에 있다보니 한 평생 한국에서 살기만 한 내가 이런 엘리트 집단에서 일을 한다는 것이 뿌듯하다고 느낀 적이 있었다.
이 집단에 들어가기 위해서, 내가 가진 모든 노력을 쏟아야만 했다. 1차, 2차, 3차 실기와 면접을 몇 일에 걸쳐 치르고, 어렵사리 바늘 구멍을 통과했다. 그리고 내가 그토록 입사하고 싶었던 이 회사로부터 합격통보를 받은 날은 인생에서 잊혀지지가 않는다. 그 때 처음으로 자아실현이라는 것을 느꼈다. 또 내 자신에 대한 확신이 섰던 날이다. 그 확신이 있었기에, 아마도 가족을 데리고 독일로 올 수 있었던 것 같다.
"건축으로 밥은 먹고 살 수 있겠다."
두 달 전 독일에서 취업이 확정되고, 한국 회사에 사직서를 제출했다. 난 지금까지 휴직을 하고 독일에서 생활하고 있었던터라, 이곳에서 일을 시작하려면 한국의 회사에 퇴직서를 제출 해야했다. 퇴직 절차는 간단했다. 몇 가지 서류에 사인해서 스캔본을 이메일로 보내면 그게 끝이었다. 허무했다. 정말 뼈를 깎는 노력을 해서 입사를 했는데, 퇴직은 네이버 카페 탈퇴하는 것 처럼 간단하다니. 이것이 말로만 듣던 온라인 퇴사였다.
사직서는 멋지게 던지고 나와야 제맛인데...쪼그려 앉아 스캔이나 뜨고있다니...
지난 한달 간 독일에서 일을 하면서 야근은 아직 한 적 없다. 건축업계는 해외에도 잔업이 많기로 유명하다. 그런데 6시만 지나도, 회사에 남아 있는 사람이 거의 없다. 퇴근을 하고 집에 도착하면, 우리 아들이 "아빠~" 하고 부르며 안아준다. 아들이 해주는 토닥토닥은 오늘 하루 고생했다고, 잘 버텼다고 위로해주는 손길처럼 느껴진다. 아들이 잠들지 않았을 때, 퇴근하는 걸 얼마나 꿈꿨는지 모른다. 어린 아들의 기억에 아빠가 떡~하니 자리잡을 수 있을 것 같다.
출근할 때 마음가짐 또한 한결 여유로워진 것 같다. 한국에서는 8시까지 '출근등록' 이라는 걸 해야했다. 정확히 8시 00초 이후로 등록하면 그날은 어김없이 '지각'이라는 주홍글씨가 찍힌다. 늦잠이라도 자면, 그날 하루 전체가 조급했다. 그리고 한달에 4번 지각을 하면 인사팀에서 경고(?)메일이 날아왔다. 여기 독일은 비슷한 듯 하지만 좀 다르다. 여기도 출근등록이라는 것을 한다. 그런데 그 목적이 조금 다르다. 불량한 직원을 선별하기 위함이 아닌, 단순히 업무 시간을 체크하기 위한 수단일 뿐이다. 그냥 일주일에 40시간의 노동시간을 기록하기 위함이다. 출근은 8시에서 9시 사이에 마음대로 출근할 수 있다. 일주일에 총 40시간의 노동시간을 유동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 혹여나 U반을 놓쳐도, 조금 늦잠을 자도 여유롭게 출근할 수 있는 게 참 좋은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이 늘 그립다. 가족도 그립고, 음식도 그립다. 뭐, 장점이 있으면 단점도 있는 법이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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