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다른 회사와 면접을 보고 왔다. 지난 글에서도 이야기했듯, 조금 더 규모가 있는 몇 군데 회사에 지원을 했고 그 중 두 곳과 면접일을 잡았다. 미리 선정해놓은 예상질문과 그에 대한 답을 몇 번이고 혼자서 읊조렸다. 열심히 연습하고 갔음에도 예상질문과 실제 질문은 하나도 맞는게 없었다. 이런. 왜 연습했나 싶다.
면접 복장은 늘 그렇듯, 한 여름에 정장 풀세트 셋팅이다. 거의 한달여 만에 머리에 왁스도 바르고, 스프레이도 뿌렸다. 거울을 보고 애써 웃어보지만 어색하기 그지 없다. 추가로 네모난 백팩을 등에 달고다니면, 영락없는 한국인 신입사원 출퇴근 모습이 완성된다. 숨길 수 없는 얼굴주름만 빼고...ㅎㅎ
와이프가 더워 죽겠는데 뭘 그렇게 갖춰입냐고 가벼운 핀잔을 준다. "그래도 어떻게 해, 난 이렇게 입고가야 편한걸..." 쪄죽을 것 같지만, 애써 면접보는 복장은 '이래야만 한다'고 스스로를 달래본다. 와이프가 뭐 타고 가냐고 물어본다. "나, 자전거 타고 갈꺼야."라고 자신있게 말하긴 했지만, 핀잔은 다시 돌아온다. "이런 땡볕에 무슨 자전거야, 땀냄새 나게... U반 타고 가." 난 말 잘 안들으니까, 그냥 자전거 타고 회사 앞까지 왔다. 도착하고 보니, 와이프 말대로 등에 땀이 거북이 등껍질마냥 퍼져있다. 이래서 남자들은 안된다. 와이프 말 틀린거 하나 없다.
약속한 시간보다 30분 먼저 회사 앞에 도착했다. 이 땡볕에 자전거 타고 오느라 젖은 셔츠를 바람에 말리며, 쓸데 없이 외운 독일어 문장들을 다시 읊조려보았다. 발음이 꼬인다. 긴장했나보다. 아 어떡하지. 나름 큰 설계 회사라고 사옥도 지들이 설계해서 새로 지었다. '사옥이 좋으면 뭐하나, 회사가 좋아야지' 라고 생각하며 자신감있게 회사 들어가려고 문을 당겼다. 안열린다. 아... 잠겨있구나. 초인종부터 눌렀어야지... 촌스럽기는...
초인종을 울리며 말했다. "저기요. 면접 보러 왔는데요" 라고 말하니, 문을 열어준다. 잠깐 앉아있으란다. 새로 지은 사옥은 크진 않지만, 꽤나 삐까뻔쩍하다. 진입하자 마자 작은 아트리움이 있고, 지하에 마련된 공개 세미나실이 보인다. 아래에서도 내가 보인다. 왠 정장입은 머리 무스바른 동양인 남자가 백팩매고 의자에 앉으니 모두가 날 쳐다본다. 민망스러웠다. 하필 이 때 세미나를 하는거니.
세미나가 끝나고 나와 면접을 볼 담당자들과 만남을 가졌다. 여자분 한분, 남자분 한분과 진행할 예정이었으나 여자분은 다른 일정이 있어서 남자분과 단 둘이 면접을 진행하였다. 남자의 직책은 팀장이었다. 그와 함께 면접보기 전, 짧게 회사투어를 했다. 일하는 사람들과 잠깐 인사도 하고, 스윽 둘러보니 여러가지 디자인안들이 보드에 더덕더덕 붙어있었다. 아, 여기가 건축가들을 갈아서 만든다는 현상설계팀(공모전팀)이구나.
출처 : SmartAsset.com
짧게 업무공간 투어를 마치고 본격적인 면접에 들어갔다. 이미 내가 보낸 지원서를 쭉 공부하고 온 것 같았다. 운이 좋았던 건지, 나와 면접 본 팀장은 한국에서 일한 경력이 있었다. 그 덕에 그는 내가 일했던 회사를 이미 알고 있었고, 우리 회사에서 어떤 건물들을 설계했는지까지 파악하고 있었다. 또 학생 때 입선했던 공모전의 심사위원 이름을 보더니 "이 사람 매우 좋은 건축가에요" 라고 말했다. 이름을 보니 스페인 건축가 같은데, 난 단 한번도 들어 본 적이 없는 건축가였다... 운 좋게 하나 얻어걸렸다.
그는 내 포트폴리오를 보며 립서비스를 조금 해주었다. 그리고 어떤 프로그램으로 언제, 어떻게 작업했는지, 팀작업인지 개인작업인지, 어떤 개념으로 디자인에 접근했는지 등등... 몇 가지 질문들을 했다. 대답은 역시 1년차 독일어 실력으로 들이댔다. 나도 내가 무슨 말을 하는 지 모르겠는데...이 사람은 개떡같이 얘기해도 찰떡같이 알아듣는 사람인건지, 고개를 끄덕이긴 했다.
그 다음으로 업무를 시작할 수 있는 날짜에 대해 협상했다. 그리고는 짧게나마 연봉에 대한 이야기가 오고갔다. 팀장은 내가 한국에서 3년의 경력이 있다는 사실과 현상설계(공모전)부터 실시설계(실제로 공사가 가능하도록 도서를 작성하는 단계)까지의 경험이 있다는 걸 노트에 적었다. 오! 이거 더 쎄게 불러도 되겠는데? 만약에 이 회사에서 나와 일을 하고 싶다고 한다면, 정말 미친척하고 연봉을 꽤 세게 부를생각이다.
한가지 마음에 걸리는 게 있다. 바로 업무에 대한 만족도인데, 이 회사는 큰 회사답게 업무가 분업화되어있다. 크게 공모전하는 팀, 실시설계를 하는 팀으로 나뉘는 것 같다. 난 작은 프로젝트라도 혼자서 끌고 나갈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 큰데, 이 회사는 대부분이 팀 작업이라 그게 조금 어려울 것 같다. 내가 미친척하고 제안할 Gehalt를 수용한다면 일해볼 마음이 있긴 하지만, 이 곳에서 일하는게 과연 좋을지 고민을 해봐야할 것 같다. 어쨌든 내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업무프로세스는 공모전에서 당선된 후, 그 프로젝트가 실현될 때까지 참여할 수 있다면 참 좋을 것 같다.
이 회사의 특징이라면, 외국인 근로자들이 많다. 그러니까 독일인 뿐만 아니라, 유럽, 미국에서 그리고 아시아에서 온 외국인들이 많다. 그래서 회사의 공식언어는 독일어와 영어 두 가지를 사용한다고 한다. 영어를 구사할 줄 아냐는 말에 "문제없다." 라고 일단 지르긴했는데.... 혹시나 내 영어 밑천이 드러날까봐 우려스럽기 짝이없다.
전체적으로 면접분위기는 나쁘지 않았던 것 같다. 긍정적인 말들을 많이 했고, 내 작품에 많은 호기심을 보였다. 건축가로서 누군가가 내 작품에 관심을 가져준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굉장한 기쁨인 것 같다. 어쨌든 이번 주 금요일에 합격여부를 알려준다고 하니, 일단은 기다려봐야 한다.
내일은 또 다른 회사의 면접이 있으니, 또 쓸데없는 예상질문이나 슥~ 읊조려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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