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퍼를 받은 회사와 계약서 초안을 핑퐁치고 있다. 복잡한 이유로 하는 핑퐁은 절대 아니고, 내 개인신상기록과 세금번호, 사회보장번호, 그리고 내가 가정을 이루고 있기때문에 필요한 서류(세금 등급 관련) 등 회사측의 요청이 있었다. 회사에서 조심스럽게 직책에 대한 언급도 여러차례 설명했다. 그러니까 내 계약서 상 직책은 Architekt im Praktikum(AiP) 인데, 처음엔 Praktikum(실습, 인턴) 단어의 뉘앙스 차이로 오해의 소지가 있었다. AiP는 쉽게 말해, 독일에서 자신의 사무실을 열 수 있는 건축가 과정에 있는 사람을 말한다. 이 AiP 과정 2년, 그리고 추가교육을 수행해야만 자신의 사무실을 개업할 수 있다. 즉, AiP는 건축가이긴 하지만 아직은 자신의 사무실을 열 수 없다. 독일에서 학위를 취득한 사람이나, 나 같이 해외에서 학위를 취득해 독일로 온 사람이나 독일에서 건축을 하려면 AiP 과정은 무조건 2년을 거쳐야 독일 건축가 협회에 등록된 건축가로 일을 할 수 있는 것이다. Praktikum 이라는 단어 때문에 회사에서는 내가 인턴 쯤으로 계약이 되는 걸로 오해할까봐 이 부분에 대해 고맙게도 여러차례 설명을 해줬다.
"저 개인적으로는 당신이 AiP로 계약하든 Architekt로 계약하든 전혀 상관없어요. 당신은 이미 건축가로서 일을 해왔는걸요. 그런데 독일에서는 건축가 협회에 등록을 하기 위해서는 AiP 독일에서 일한 경력 2년의 이 필요해요." 뭐... 어쨌든 독일 건축가 협회에 등록을 하려면 AiP부터 시작해야 한다.
다른 걸 떠나서 이 회사에 자꾸 정이가는 건 나를 꼭 채용하고 싶다는 의지가 보인다. 내가 독일어도 막 그렇게 잘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이 곳에서 학교를 나온 것도 아닌데 이런 의지를 보여주니 나로서는 감사하다.
지난 주 목요일, 회사 측에 위의 이슈들에 대한 답변과 정확한 근무시작일에 대한 질문을 했다. 어제까지 아무런 답변을 못받고 있었다. 아직 계약서에 싸인을 하지 않았기에, 살짝 불안한 마음도 있었다. 작은 회사이다 보니, 진행예정인 프로젝트가 갑자기 빠그라지면 나의 고용문제 역시 고용주 입장에서는 다시 생각해봐야할 문제이기도 하기 때문이다.(실제로 한국의 건축설계업계 특성상 빠그러지는 일이 허다하니...) 그래서 지난 이메일에 내가 고용이 된 후 진행하게 될 프로젝트에 대해 질문을 했었고, 오늘 그것에 대해 클라이언트와 회의 후 나에게 확정된 근무 시작일과 나의 직책, 연봉, 계약기간 등이 확정된 계약서 초안을 다시 보내왔다.(오래 걸려서 미안하다는 말과 함께...)
이메일을 주고 받는 동안 Sehr geehrter Herr Choi(친애하는 최씨) 에서 Guten Morgen Herr Choi(안녕하세요 최씨) 로... 그리고 마침내 Hallo Herr Choi(안녕 최씨) 로 뭔가 더 가까워진 느낌이 들었다.
이 회사와 구체적인 고용계약을 진행중인 반면, 동시에 또 다른 설계회사들을 지원하고 있다. 이 전 글에도 언급했듯, 나에게는 아주 고마운 독일인 친구가 한명있는데 그 친구의 도움으로 다른 회사들도 노크 중이다. 지금 계약을 진행중인 회사가 10명 이하의 작은 회사라면, 지금 지원하고 있는 회사들은 약간 규모가 있다. 이 친구는 내가 좀 더 번듯한(?) 직장에 다녔으면 하는 마음이 크다. 결국 이 친구의 설득으로 다른 회사들도 노크 하기 시작했다. 그 과정에서 이 친구가 한 말들이 꽤나 인상적이었다.
"어차피 한 곳에서 오퍼가 왔으니까, 다른 곳도 지원해보자. 돈드는거 아니니까."
"너무 겸손해 하지마. 너가 갖고 있는 학교 성적과 경력은 누가봐도 자부심을 가져도 돼. 한국인들은 너무 겸손해."
"떨어지는 것에 연연해 하지마. 어차피 한 곳만 붙으면 되는거니까."
나를 뽑겠다고 하는 회사도, 나를 높이 평가해 주는 이 친구도 참 고맙다. 우리 어무이가 성경구절을 보며 늘 하늘 말씀이 "항상 감사해라" 인데, 독일에 오니 감사할 일이 참 많다는 걸 느낀다. 모든게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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