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 아침, 우리 가족은 독일인 친구의 추천으로 근처 수영장에서 열리는 오픈하우스를 찾았다. 수영장도 구경하고, 가족회원으로 등록도 할 겸 오랜만에 가족이 함께 나선 나들이였다. 날씨도 좋고, 기분도 좋고, 수영장 분위기도 기대 이상으로 참 좋았다.
하지만 이 기분 좋은 하루에 작은 소동이 일어났다. 바로 우리 첫째 때문이었다. 아침부터 아이패드와 한참 씨름하던 아들은 갑작스런 외출이 못마땅했는지 투덜대며 불만을 쏟아냈다. 그러다 결국 둘째와 다툼이 생기고, 아이들 모두 수영장에서 눈물을 쏟는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참고 또 참던 아내는 결국 폭발했고, 오랜만에 단호한 엄마의 목소리가 수영장에 울려 퍼졌다. 그동안 지키지 못한 약속들, 해야 할 일을 미루고 넘겼던 순간들을 조용히 짚어내며 아이와 대화를 이어갔다. 아이도 아마 알고 있었을 것이다.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그리고 부모가 그냥 넘어가주고 있었다는 걸. 며칠 동안 쌓여온 감정이 결국 한순간에 터져버린 셈이었다.
그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던 나는 아들에게 말했다.
“신우야, 오늘 집에 가면 아빠랑 10km 뛸 거야. 집에 도착하면 바로 달릴 준비해. 오늘은 힘들다고 멈추는 날이 아니야. 다리가 부러져도 달릴거야. 10km 완주해야 끝나는거야.”
체벌성의 조금은 단호한 결정이었지만, 7km까지는 뛰어본 아이였기에 무리라고 생각하진 않았다. 며칠간 나태한 채로 살았던 스스로를 벗고, 한계를 넘어보는 경험이 필요하다고 느꼈다. 무리가 되지 않도록 3km마다 물을 챙겨주고, 7km 지점에서는 준비해간 에너지젤도 보급해주었다.
초반 3km는 생각보다 잘 달렸다. 그런데 점점 숨이 차오르자 다시 투덜거림이 시작됐다. 그때마다 나는 이렇게 말했다.
“아직 말할 힘이 남았네. 그럼 페이스 올려보자!”
달리기 내내 아들은 징징거리며 달렸다. 자기가 달리고 싶어서 달리는 것도 아니고, 엄마 아빠한테 혼난 후 달리는 것이니 나름대로는 억울함이 있었을 것이다. 그 억울함을 달리면서 울음소리로 시위하듯 내고 있었다. 지나가는 사람들도 아이가 신경쓰였는지 한번씩 쳐다보면서 지나간다. 나는 개의치 않았다. 오히려 그럴때마다 웃으며 말했다.
“울고 싶으면 아빠 선글라스 줄께. 쓰고 달려. 그럼 맘껏 울면서 달릴 수 있어”
그러자 아들은 놀리지 말라며 이를 앙 다물고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숨이 차고, 다리가 무거워질수록 왜 달리고 있는지는 없어지고 완주라는 목표 하나만 남았다. 아들의 속도가 쳐질 때 마다 다그쳤다.
"뒤쳐지지마. 오늘은 웃으면서 달리는 날이 아니야. 다리로 몸을 더 밀어. 한발한발 집중해. 울고, 불평하고, 징징댈 힘이 있으면 그 힘으로 더 밀어."
단호하게 말했다. 이쯤 되니 아빠가 완주하지 않고는 끝내지 않을거라는 걸 누구보다 녀석이 더 잘 알았을 것이다. 그 사실을 받아들인 녀석은 점점 의지를 다져가며 자신과 싸우는 모습이 느껴졌다. 그렇게 8km를 넘기자 징징거리는 걸 멈추고, 호흡을 가다듬으며 스스로의 속도로 뛰기 시작했다. 마지막 1km는 그 어떤 때보다 힘차게 달렸다. 그렇게 우리는 거의 한 시간 반을 달렸다. 완주 후에는 잘 참고 견뎠다고 다독여주었다.
그날, 아들의 첫 10km는 그리 멋진 시작은 아니었지만, 끝은 꽤 의미 있었다. 본인의 의지로 시작한 것은 아니었지만, 끝까지 해냈다는 성취감은 고스란히 아이의 것이었다. 그리고 놀랍게도 그 후로 집에서의 태도도 조금 달라졌다. 다시 스스로 할 일을 챙기고, 예전처럼 책임감 있는 모습을 보여주기 시작한 것이다.
투덜이에서 다시 긍정이로 돌아온 모습. 몸이 힘들어봐야 지금의 편안함이 얼마나 감사한 건 줄 안다. 녀석에게 10km 달리기가 마음을 다잡는 시간이었길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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