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에 있었던 슈투트가르트 달리기 대회(Stuttgart-Lauf)에서 신우는 좀 더 잘 달리고 싶었는지 나보고 일주일에 3번, 농구가지 않는 날 같이 달리기하는게 어떻겠냐고 물었다. 그날부터 신우와 나는 달리기 대회 한달 전부터 농구가 없는 화, 목, 일요일 2~3km씩 공원을 달리곤 했다. 신우는 평발에다가 런닝에 익숙하지 않은 만 10살. 그래서 조금이라도 무리하면 발에서 바로 신호가 온다. 어떤 날은 발목이 아프다며 걷기만한 날도 있었고, 또 어떤 날은 달리다 걷다를 반복하는 날도 있었다. 500m를 달리고도 숨이 찬다며 힘들어한 날이 있었고, 5km를 달리고도 더 달릴 수 있다고 말한 적도 있었다. 걸었든... 뛰었든... 중요한 것은 계획한 날짜에 일단 신발끈을 조여매고 밖에 나갔다는 것이다. 아쉽게 대회를 앞둔 마지막 일주일은 기침이 너무 심해 런닝을 못했지만 예정되었던 달리기 대회는 무사히 완주했다.
그 이후로도 신우와 나는 즐겁게 달리고 있다. 농구도 Sommerpause(여름 휴가기간)에 들어가서 퇴근 후에 아들과 런닝할 시간이 더 여유로워졌다. 우리는 달릴 때, 서로 이야기를 주고받을 수 있을 정도로 달린다. 어쩔 때는 이야기를 하다가 평소 목표거리인 2km를 넘긴지도 모르고 계속 달릴 때도 있다. 가끔은 우리 아들이 이렇게 말하는 걸 좋아하는 아이인가 싶기도 할 정도로 온갖 주제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요즘은 주로 로블록스 게임 이야기를 하는데, 게임 종류만 수백가지인 이 게임을 이야기 할 때마다 통 이해는 못하겠지만 "그래? 그게 뭔데?" 정도의 대꾸만해주면 혼자 신나서 계속 이야기를 한다. 신우에게 달리기는 어쩌면 아빠에게 자기의 세상을 신나게 얘기하는 시간이 아닐까.
달리다보면 저절로 기분이 좋아진다. 신체가 건강한 느낌이 들면서 몸에는 행복 호르몬으로 가득찬다. 동시에 귀옆을 스치는 바람소리와 숨소리, 새소리, 그리고 신나게 떠드는 신우의 수다소리를 듣고 있노라면 행복감이 극에 달한다. 뭐라고 설명해야할까. 행복함과 벅참을 섞어놓은 그런 느낌이다. 그래서 요즘은 퇴근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 너무 즐겁고 신이난다. (돈이 많이 없어봐서 행복을 돈으로 살 수 있을지 없을지 모르겠지만...) 아마도 지금 이런 행복은 돈으로도 살 수 없지 않을까.
독일로 오기 전까지 서울 망원동에 와이프와 나, 신우, 그리고 친동생같은 처제와 함께 살았었다. 삐까번쩍한 아파트도 아니고, 볼품없는 외관의 일반 연립주택 제일 윗층이었다. 나름 건축가라며 페인트며 장판이며 자질구래한 수리도 직접했었다. 드디어 그 집에 처음으로 이사하던 날. 우리는 그 집에 "내미안"이라는 애칭을 붙였다. 래미안 아파트의 이름을 패러디해서 우스갯 소리로 만든 이름이었는데, "(겉보다는)속이 아름답고 편안한 곳"이라는 뜻으로 붙였다.
요즘 집에 올 때면 "내미안"이라는 우스꽝스러운 이름이 자꾸 떠오른다. 그 이름처럼 우리 가족은 속이 아름답고 화목한 가정이 되어가는 것 같다. 우리가 지금 한국에 있었다면 신우와 이런 순간들을 함께 할 수 있었을까. 참 행복한 나날들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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