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에 살면서 가장 지진부진한 일 중 하나가 건축사 협회 등록이다. 답답한 노릇이지만 이 일은 아직도 진행중이다. BW주 건축사 협회는 아주 보수적인 것으로 정평이 나있다. 정확히 말하자면 나는 아직 독일 건축사협회에 등록이 되지 않았기 때문에 건축 설계일을 하는 "건축가"라고 할 수는 있지만, 정식 협회에 등록된 "건축사"는 아니다. 그래서 회사 이메일이나 명함에도 Architekt 라는 명칭을 쓰진 못하고 Master of Architure를 쓴다.
건축사라는 타이틀이 엄청나게 대단하거나 그런게 아니다. 건축을 전공하고, 협회에 등록해서 2년간 일하면 누구나 받을 수 있는 게 건축사 타이틀이다. 한국처럼 시험을 보거나 하지 않고, 2년간 정해진 세미나와 요구된 실무 경력만 증명할 수 있으면 된다. 협회에 등록된 건축가든, 그렇지 않은 건축가든 회사에 고용된 사람이라면 일하는 데 큰 차이점은 없다. 매년 협회에 회비를 내야한다는 것, 세미나를 들어야 한다는 것, 그리고 협회 소속으로 연금혜택을 받을 수 있다는 게 차이점이라면 차이점이다. (물론 독일에서 내 설계사무실을 차릴거라면 당연히 협회 등록을 해야한다)
내가 타이틀에 목숨거는 사람은 아니지만, 동등한 수준의 학위를 갖고 있고 같은 업무를 하는데 타이틀을 받지 못하면 이건 좀 억울하지 않은가. 그래서 협회랑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끝까지 가보려고 한다. (반대로 여기로 유학을 와서 건축 전공하신 분께서는 다르게 생각하실 수도 있을지도 모르겠다)
만약 해외 학위로 BW주 건축사 협회에 등록을 하고 싶다면, 독일 학위가 있는 것이 편하다. 아니면 그냥 다른 주에 취업하는 것이 정신건강에 좋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외 학위로 BW에서 "등록된" 건축가로서 곧죽어도 일을 해야겠다면 이 글이 참고정도는 될 수 있을 것이다.
지금까지 내가 겪어온 상황과 진행과정을 나열하자면 이렇다.
1. 첫 회사 취업 후, 우편으로 건축사 협회 등록 신청(학위, 성적, 안멜둥 서류 등 번역과 공증 필요)
2. 코로나 발생으로 업무 지연, 신청 1년 후 해당 학위는 유럽/독일 학위가 아니므로 협회에 등록할 수 없다며 거절됨. 이 때 건축사 협회가 내 학위에 대한 자체 ZAB인증(한국학위가 독일학위와 동등하다는 검증을 받는 절차) + 자체 학위검증을 했다며 검수비용 약 300 유로를 청구함.(성과없는 결과에도 검증은 검증이니 지불해야 함 - 1차 빡침)
3. 이직 후 협회에 다시 문의 -> 너희 협회가 자체적으로 실시한 ZAB인증 결과 서류를 나는 보지 못해서 못믿겠으니 내가 공식기관인 ZAB에 요청해서 학위 인증을 받아 다시 제출해도 되는지 문의 -> 협회 측에서는 직접 ZAB을 신청해서 긍정적인 결과가 나온다면 협회 등록 시에 제출해도 된다는 답변을 받음
4. 내가 독일 공식기관에 ZAB 인증 신청 -> "독일 학위와 한국 학위가 같음"을 공식기관에서 인정 받음 -> (회사가 바뀌었으므로) 신청 서류와 함께 건축사 협회에 재차 송부함
5. 몇 주 연락없다가 메일을 보내니 그 때서야 결과를 우편으로 보내줌 -> 결과는 "네가 받은 ZAB인증이 독일 학위와 동등하다고 인정받았다라도, 너의 ZAB인증 서류를 우리는 받아 줄 수 없다. 왜냐하면 아래 3가지 교육과정(예술로서의 건축, 건축설계 과정, 건축비용과 법)이 빠졌기 때문이다." 라는 납득하기 힘든 결과를 받음. 추가로 협회에 등록하려면 독일의 석사 과정을 졸업하라는 추천을 받음(외국인이 BW주에서 석사 학위를 할 경우, 이제는 학기 당 1,500유로를 내야함. 4학기 총 6,000유로) -> 이 때 검증비용은 추가로 지불하지 않음. 그러나 답변 서류에 다음에 다시 신청할 때는 비용을 청구하겠다는 문구를 넣어놓음 (2차 빡침)
6. 협회와 전화 통화 시도 -> 독일의 공식기관인 ZAB에서 독일 학위와 내 학위가 동일하다고 인증받았는데 왜 등록이 안되냐고 재차 항의 -> 네가 받은 ZAB 결과가 positiv인지 negativ 인지는 중요하지 않고, 네가 3가지 교육과정(예술로서의 건축, 건축설계 과정, 건축비용과 법)을 배웠다는 것을 증명하거나 독일 석사가 있어야 한다는 답변을 들음 -> 3차 빡침 -> (한숨 쉬고 감정적으로 대응하면 안된다고 되뇌이며) 내 대학은 국제 인증을 받은 5년제 학사 학위이므로, 니들이 말한 3가지 교육과정을 충분히 증명할 수 있다. 그리고 나는 이미 석사 학위가 있는데 다시 한번 더 들으라는 건 불합리하고 현실적으로도 불가능하다. 나는 가장이고 돈을 벌어야 한다며 감정에 호소 ㅋㅋ -> 담당자가 감정적 호소에 동했는지 해당 교육과정을 증명하는 서류를 보낼 때, 내가 독일에서 석사 학위를 할 수 없는 이유(처자식을 먹여살려야 한다라는 이유)를 편지로 보내달라는 요청을 받음. 참내.
7. KAAB와 대학교에 문의 + 홈페이지에 올라온 자료를 다운로드하여, 내가 수강했던 모든 과목에 대한 영문 학업 계획서를 수집함 -> 3가지 교육과정(예술로서의 건축, 건축설계 과정, 건축비용과 법)에 해당하는 항목을 카테고리별로 나눠 서류화 작업을 함. 다행히 모교가 건축학 인증을 잘 준비해놓은 덕에 모든 교과목의 교과과정 설명서를 어렵지 않게 구할 수 있었음.
8. 편지와 함께 다시 추가 서류를 협회에 제출함. 편지는 아래와 같이 작성.
서류를 준비하면서 스스로 이렇게까지 할 가치가 있는가라는 질문이 계속 들었지만, 일단 끝까지 가보기로 한 이상 최대한 담당자가 한번에 잘 이해할 수 있도록 정성스런 추가 자료도 첨부함.
9. 현재 상태는 심사 중이라는 이메일을 협회로부터 받음. 결과는 언제나올지는 모르는 상태 (10분만 검토해도 나올 걸 이걸 도대체 왜 이렇게까지 해야하는지 아직도 정말 이해가 되지 않음) 이번에도 거절되면 또 검수비용 몇 백유로내고, 의미없는 결과를 받아들텐데 이 때는 어떻게 해야하나. 휴.
...협회 등록을 이렇게까지 해야하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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