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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가의 시선/독일에서 건축하기

[건축]#4. 두번째 프로젝트 마감 2편, Trotzdem

by 도이치아재 2018. 11. 9.

첫 단추가 잘못 끼워졌음에도 불구하고! 어쨌든 프로젝트는 진행해야 한다. 이렇게 된 이상 거지같은 아이디어도 보석처럼 보이도록 꾸며야 하는 게 내 역할이다. 최대한 잘 꾸며내서 당선에 한발짝이라도 다가가야 한다.

어쨌든 이곳 독일에서 프로젝트 하나를 멋지게 당선시키고 싶다. 그리고 그 프로젝트가 지어 질 때까지 꼭 참여하고 싶다. 이런 내 마음을 아는 지 모르는지, 가끔은 무책임한 팀장의 태도에 정말 어이가 없을 때가 많았다. 이번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점이 이 부분이었다. 내 목표는 당선인데, 팀장의 목표는 그저 '제출'에 있었다. (일은 안하면서, 일하는 척을 하려는 건지)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지만, 우리의 목표가 아주 달랐다. 거기에서 스트레스를 좀 많이 받았다. 앞으로도 그녀와 일을 계속하려면 내가 조금은 내려놔야 할 것 같다. 이 회사에서는 언어에 좀 더 익숙해 지는 것만 목표로 삼아야겠다.

우리는 마감 일주일전에 현장 답사를 다녀왔다. 난 답사도 안가는 줄 알았는데 그래도 다녀왔으니, 앞으로 그려질 건물의 모습이 좀 더 명확하게 머리에 그려진다. 어떻게든 거지같은 아이디어를 가지고도 찰떡같이 잘만들어 내는 게 지금 나한테 필요한 역량이 아닐까. 그래서 열심히 했고, 그래서 최선을 다했다. 처음부터 방향이 이미 틀어져버린 공모전이었지만, 그 속에서 지푸라기라도 잡아보려고 아둥바둥 했다. 아무런 디자인 컨셉이 없는 패널에 다이어그램(여기서는 Pikto라고 부른다...)을 구겨넣고, 텍스트까지 추가하니 제법 공모전 패널같은 모습이 갖춰졌다.

공모전 패널에 Nutzung(내부 프로그램)에 대한 설명이 제일 먼저 오는 것이 정말 효과적일까... 팀장에게 몇 번 이야기 했지만, 어쨌든 그녀의 생각이니 이렇게 할 수 밖에... 

마감시간이 다가오면 다가올 수록 나와 K는 굳이 서로 말을 안해도, 뭘 해야할지 알고 있었다. 손발이 척척 맞아들어가는 느낌. 그렇게 마감은 어찌됐든 했다. 아직도 영 마음에 들지 않는다. 어쩌면 겉보기엔 제법 갖춰진 것 처럼 보여질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들여다보면 엉망이라는 걸 누구나 알아차릴 수 있다.

마감 2일전까지 평면도가 계속 확!확! 바뀌었다. 자꾸만 번복되는 팀장의 결정에 프로젝트가 진행이 되질 않았다. 결정장애 팀장...이거 뭐 어떻게 해야하나. 총체적 난국이었다. 평면도가 바뀌면 단면도, 입면도가 바뀌는데... 팀장은 일정에 대한 개념이 아예 없는 것 같았다. 이걸 독일어를 잘 못하는 사람 한명과 이제 회사 출근한지 네달된 사람 한명이 같이 하려니, 정말 정말 힘에 붙였다. 결과적으로 이번 프로젝트도 지난 프로젝트처럼 평면에서만 헤메대 다른 건(입면, 단면) 대충 휙하고 끝낸 프로젝트가 되어버렸다.

이런 상황에서도 어쨌든 최대한 뽑을 수 있는 퀄리티는 뽑아내야 했다. 힘겹게 패널을 제출한 후, 힘이 빠져 퇴근하는 길. 팀장이 무심하게 한마디 던진다.

"이번에 정말 힘들었어도 많이 배웠지?"

이게 무슨 똥같은 소린가. '어, 많이 배웠어. 너처럼 일하면 안된다는 거.' 차마 입 밖으로 낼 순 없고, 속으로 아주 크게 소리쳤다. ㅜㅜ

집으로 가는 길, 동료 K와 깊은 대화를 나누었다. 그런데 K의 입에서 청천 벽력같은 소리가....

"나 11월까지만 일하고, 그만두려고....이미 결정했어."

그럼 난. 어떡하니? ㅜ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