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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가의 시선/독일에서 건축하기

[건축]#1.독일에서 첫번째 프로젝트를 마치다.

by 도이치아재 2018. 10. 6.

한달 조금 넘게 새로 시작한 학교 현상설계에 참여했다. 그리고 오늘을 마지막으로 이 프로젝트의 모든 일정이 마무리되었다. 프로젝트를 진행하면 할 수록 한국의 작업방식과는 참 많이 다르다는 걸 느꼈다. 나는 이곳 독일에서 건축교육을 받은 적이 없어서 오히려 그런 차이점이 흥미로웠지만, 때론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상황들도 있었다. 이것은 건축문화의 차이기도 했고, 한국과는 다른 건축교육의 차이기도 했다.

먼저 우리의 과제는 오래된 학교 건물 옆에 단층건물을 철거하고 새로운 학교시설(체육관, Mensa 및 동아리 시설 등)을 증축 혹은 신축하는 것이었다.

이 학교 대지를 직접 방문해보니 사진에서 보이는 오래된 건물과 낡은 야외계단을 제외하고 그닥 매력적인 구석이 없었다. 개인적으로 난 이 낡은 계단이 너무 마음에 들었다. 학교 선생님과 부모들은 옆에 벤치가 있음에도 이 낡은 계단에 앉아 아이들이 뛰어노는 것을 웃으면서 보고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계단 위에 올라서서 내려다보는 학교 풍경은 정말 아름다웠다.

"이 계단이 없으면 많은 아이들이 운동장에서 놀다가 어디서 모이고, 어디서 쉴까?" 라는 생각이 들었고, 이것을 설계에 꼭 반영하고 싶었다. 

결과적으론 반영하지 못했다. 아쉽지만 싸그리 뭉개져 버렸다. 아직도 난 이 요소를 설계에 반영하지 못한게 꽤나 마음에 걸린다. 어쨌든 이렇게 설계는 마무리가 되었고, 우리팀의 설계안은 아래 모형과 같다.

과정이 순탄치 않았던 것에 비해, 결과물이 꽤나 정갈해보여서 느낌이 묘하다. 자, 이제 비판을 좀 해야겠다.

먼저 우리팀은 설계할 건물의 컨셉(메인 아이디어)과 그 프로세스가 상당히 불명확했다. 이 프로젝트는 아이디어로 승부하는 현상설계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좀 더 솔직히 말하면 독일 건축가들은 이러한 것들에 관심이 없어보였다. 한국의 건축교육에서 가장 중요하게 다뤄지는 부분이 이 부분인데 말이다. '왜 이렇게 설계해야만 했는지'에 대한 답은 컨셉과 프로세스가 되어야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동안, 이런 이야기들은 전혀 언급이 되지 않았었다. 그러니 난 이들의 아이디어에 공감이 되질 않았다. 나에게는 근거없는 아이디어였고, 설득력이 있지도 않았다.

나도 초반에 몇 가지 안을 냈었다. 디자인 컨셉에 대해 이야기했고 우리 디자인 안이 어떤 방식으로 표현되면 좋겠다고까지 스터디모형과 함께 얘기했다. 물론, 굉장히 부족한 독일어로 말이다. 그래서 그림을 그려가며 이야기했다. 이들이 이해를 했는지 못했는지 내가 알지 못하지만, 결과적으론 채택되지 못했다.

건축은 항상 팀작업이기 때문에 내 아이디어로 설계가 진행될 수도 있고, 다른 팀원의 아이디어로 진행 될 수 있다. 이 때 더 좋은 아이디어에 대한 팀원들의 공감이 있어야 더 좋은 방향으로 발전시킬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내 프로젝트"라는 애정이 가게 마련이다. 하지만, 문제는 우리팀이 채택한 아이디어에 내가 전혀 공감을 하지 못했다는거다. 그래서 처음엔 스스로 불만이 좀 있었다. 아무리 긍정적으로 들여다보아도 이 프로젝트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왜냐하면 막 휴가를 다녀온 대표건축가가 지나가다가 툭 던진 평범한 아이디어를 팀장이 덮석 물었기 때문이었다.

엎친데 덮친격으로 함께 일하는 팀장이 팔랑귀였다. 다른 팀장이 와서 우리 디자인에 대해 이야기하면, 적당히 반박하고 적당히 수용해야하는데 무조건적으로 수용했다. 그렇다. 애초에 디자인을 이끄는 메인 아이디어와 컨셉이 없었으니, 논리가 부실할 수 밖에 없는거였다. 나중에는 우리 팀장이 다른 팀장에게 디자인을 보고하는 것 같은... 이상한 상황이 벌어졌다. 내 속에선 팀장에 대한 신뢰가 살짝 떨어졌다.

어찌 됐든 마감시간이 다가오면 결정이 안나던 것들도 어쩔 수 없이 결정이 되어져야한다. 사경을 헤메던 입면 디자인도 그나마 없어보이지 않는 수직 루버로 결정이되었다. 그렇게 마무리는 나쁘지 않게 됐다. 주어진 시간 안에 도면과 디자인패널이 완성되었고, 모형까지 촉박하지 않게 완성되었다. 이제 정말 제출만 하면 된다. 완성된 결과물을 보더니 옆 팀에선 Geil(쩐다) Schön(멋지다, 예쁘다) 라는 말을 한다. 우리팀 팀장도 마음에 드는 눈치였다. 나도 잘 마무리되었음에 만족했다.(설계안은 여전히 만족스럽지 않다) 

회사 생활에서 만족스러웠던 건, 이 프로젝트를 하는 동안 야근을 하지 않았다. 다만, 마감 전날 일요일에 한번 주말출근을 했다. 한국같았으면 프로젝트 시작과 동시에 줄야근 + 주말 출근이었을테니, 나름 만족한다. 덕분에 매일 가족과 함께 저녁을 먹을 수 있었다. (디자인이고 나발이고 이거면 됐지 뭐.)

이제 당선이 되느냐 안되느냐만 남았다. 우리 설계안이 당선이 된다면, 내가 갖고있는 기본적인 건축 틀을 송두리째 바꿔야할 것 같다. 그렇지 않는다면 다음 번엔 내 의견을 조금 더 쎄게 목소리 내야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