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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가의 시선/건축 포트폴리오 만들기

AI시대, 신입 건축가의 '진짜' 포트폴리오 전략

by 도이치아재 2026. 1. 30.

건축계에도 AI의 파도가 거셉니다. 텍스트로 질문하면 법규를 검토해주는 ChatGPT, 키워드 몇 개로 몽환적인 투시도를 그려내는 제미나이(Gemini)나 미드저니, 나노바나나 같은 툴들이 이미 우리 책상 깊숙이 들어와 있습니다.

이제 건축학도들에게 "그럴싸한 결과물을 만드는 능력"은 더 이상 유효한 변별력이 아닙니다. 누구나 AI라는 치트키를 써서 '개떡' 같은 아이디어도 '찰떡' 같은 렌더링으로 포장할 수 있는 시대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신입 건축가를 뽑는 소장님들의 시선은 어디로 향하게 될까요?

오늘은 AI 시대에 오히려 더 빛을 발하는, '과정의 미학'을 담은 포트폴리오 방향성에 대해 깊이 있게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1. 결과의 상향 평준화, '무엇(What)'보다 '어떻게(How)'

과거의 포트폴리오는 압도적인 '킬링 이미지' 하나로 승부할 수 있었습니다. 화려한 CG나 복잡한 다이어그램은 그 자체로 지원자의 '성실함'과 '기술력'을 증명했죠.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다릅니다.

  • 현상의 이해: AI는 단 몇 초 만에 전문가 수준의 빛과 질감을 표현합니다. 만약 당신이 포트폴리오에 결과물 위주로만 내용을 채운다면, 면접관은 속으로 이렇게 생각할지도 모릅니다. "이거 본인이 직접 고민해서 만든 건가, 아니면 프롬프트 몇 번 넣어서 뽑아낸 건가?"
  • 변별력의 실종: 논리가 부족한 설계도 AI를 거치면 그럴듯한 철학적 문장으로 재탄생합니다. 이제 "정리된 결과물"은 지원자의 실력을 보증해주지 않습니다.

결국 질문은 다시 본질로 돌아옵니다. "AI가 다 해주는 시대에, 당신은 이 설계를 위해 어떤 '인간적인 고민'을 했는가?" 이 질문에 답할 수 있는 포트폴리오만이 경쟁력을 갖습니다.


2. 무(0)에서 완성 되기까지: '번뇌의 시간'을 증명하라

실무에서 신입 사원에게 기대하는 것은 완벽한 마스터플랜이 아닙니다.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사고의 유연함과 끈기입니다. 이를 가장 잘 보여줄 수 있는 방법은 역설적으로 '지저분한 과정'입니다.

포트폴리오의 많은 분량을 최종 렌더링에 할애하기보다, 아이디어가 태어나고 수정되고, 때로는 폐기되었던 흔적에 집중해 보세요.

  • 예시 (사이트 분석): 단순히 구글 맵을 캡처해 넣는 것이 아니라, 현장에서 느꼈던 소음, 빛의 각도, 사람들의 움직임을 본인만의 거친 드로잉과 메모로 남긴 흔적을 보여주세요.
  • 예시 (대안 검토): 최종 안이 나오기까지 거쳐 간 A안, B안, C안의 흔적을 나열하세요. 왜 A안이 탈락했고, B안에서 어떤 요소를 가져와 최종안이 되었는지 그 '선택의 근거'를 보여주는 것이 백 장의 고퀄리티 이미지보다 훨씬 강력합니다.

 


3. 가장 확실하고 검증된 카드: 스터디 모형과 스케치

AI가 절대 흉내 낼 수 없는 영역이 있습니다. 바로 물리적인 접촉과 즉흥적인 사고의 기록입니다. 이것은 설계에 대한 진지함을 보여주는 가장 확실한 카드입니다.

① 덕지덕지 뜯고 붙인 '스터디 모형'

매끄러운 아크릴 모형이나 3D 프린팅 결과물은 예쁘지만 감동이 적습니다. 소장님들의 눈길을 끄는 것은 폼보드 자국이 남고, 테이프로 덕지덕지 수정된 1/100 사이즈의 작은 매스 모형들입니다.

  • "이 형태를 만들기 위해 20개의 매스를 깎아보았습니다."
  • 이 한 마디와 함께 나열된 투박한 모형 사진은 당신이 공간의 볼륨을 이해하기 위해 들인 '시간의 물리적 질량'을 그대로 전달합니다.

② 고뇌가 담긴 '수동적 스케치'

CAD나 레빗(Revit)으로 선을 긋기 전, 트레이싱지 위에 덧그려진 수많은 스케치들을 포트폴리오에 담으세요.

  • 생각이 꼬여서 X표를 친 흔적, 아이디어가 떠올라 급하게 갈겨쓴 메모들.
  • 이런 흔적들은 당신이 설계 과정에서 직면한 문제를 회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돌파했음을 보여주는 '건축적 투쟁의 기록'입니다.

4. '학생다움'이라는 최고의 무기

가끔 신입 지원자 중에는 실무자처럼 보이고 싶어 지나치게 정제된 포트폴리오를 제출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회사가 신입에게 보고 싶은 것은 세련된 테크닉이 아니라 '건축을 대하는 뜨거운 태도'입니다.

전통적인 수단인 모형과 스케치는 낡은 방식이 아닙니다. 오히려 AI 시대에 지원자의 진정성을 증명할 수 있는 가장 현대적인 무기입니다. 누구나 그럴싸한 결과물을 만들 수 있는 시대, 당신은 '그럴싸한 사람'입니까, 아니면 '치열하게 고민하는 건축가'입니까?

 

 


맺으며: 기회는 흔적을 남기는 자에게 옵니다

AI는 도구일 뿐, 건축의 중심은 여전히 인간의 사고에 있습니다. 본인의 포트폴리오를 다시 한번 펼쳐보세요. 만약 너무 깔끔하기만 하다면, 당신의 책상 서랍 속에 잠자고 있는 찌그러진 모형과 낙서 같은 스케치들을 꺼내어 당당하게 배치하십시오.

그 지저분한 흔적들이야말로 AI가 범람하는 이 시대에 당신을 대체 불가능한 인재로 만들어줄 것입니다. 고민의 깊이가 담긴 포트폴리오를 준비하는 분들에게 더 많은, 그리고 더 좋은 기회가 찾아가길 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