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글에서 쓴 것 처럼 독일어 성적을 4점 받아온 이후, 아들의 상황도 여러가지 바뀌었다. 먼저 아들과 일주일에 한번씩 독일어 수업을 해줄 김나지움 학생을 나흐힐페로 붙여주었고, 둘째로 하루에 10개씩 독일어 단어와 숙어를 매일 같이 외우고 있다. 처음에는 하기싫음과 짜증을 내며 외우느라 10개 외우기도 힘들었는데, 요즘은 익숙해 졌는지 곧 잘 외우는 것 같다. 잘 외워지지 않는 단어는 체크해두어 복습할 때 그 단어들만 중심적으로 보기도 한다. 이게 효과적일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른이 단어외우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게 공부하고 있다.
단어장을 만들어주는 일은 꽤나 손이 많이 가는 작업인데... 신우가 앞으로 읽을 독일어 책을 엄마가 미리 한번 읽은 후에 신우가 모를만한 단어를 모아서 단어장 형태로 준비해주면 그걸 외운다. 그리고 신우가 엄마표 단어장을 일정 수준 외웠다면 그 단어가 나오는 독일어 책 읽는다. 모르는 단어는 이미 머릿속에 있으니 책읽는 게 훨씬 수월하게 느껴질 것이고, "이거 외웠던건데! 이거 내가 아는건데!" 라며 책 읽는 동안 뿌듯함을 느끼게 해주는 것이 목표이다. 실제로 요즘 그렇게 읽는 것 같아 대견스럽다. 진작에 이렇게 해줄껄껄껄.
독일어 시험이 지난 수요일에 있었다. 시험은 Leseverständnis. 지문을 읽고 문제에 대한 답을 찾아내는 독해 시험이었다. 그 시험을 위해 우리는 5일 정도를 30분~1시간씩 시험을 위해 공부했다. 준비 첫날은 간단한 독해 문제로 시작했다. 신우는 어렴풋이 답을 찾아내고 있었다. 그래서 문제 속 확실한 키워드를 찾는 연습과 그 키워드에 알맞는 근거를 본문에서 찾는 연습을 했다. 요령을 조금 터득하니 둘째 날, 셋째 날은 더 빠르게 정확하게 키워드와 답을 찾아갔다. 넷째날은 난이도를 올려 어려운 문제를 내줬다. 본문의 길이도, 문제의 양도 해왔던 것에 비해 길었다. 내용도 역사 문제여서 쉽지 않았을 것이다. 신우는 멘붕이 왔고, 답답함에 눈물을 뚝뚝...
잘하고 싶은데 잘안되는 그 마음 아빠도 잘 알지만 해내야 하는 것들이라고 생각하며 신우에게 시간을 주었다.
"신우야, 어려운 문제가 나왔다고 멘탈이 흔들리면 더 집중이 안돼. 그럴 땐 눈을 감고 몇 초간 깊게 숨을 쉬어봐."
신우는 눈을 감고, 몇 차례 숨을 쉬었다. 그리고 다시 눈을 부릎뜨고, 본문을 보았다. 하지만 이렇게 한다고 바로 안풀리던 문제가 풀리진 않는다. 그래서 한 문제를 신우와 함께 지금껏 해왔던대로 천천히 풀었다.
"멘탈이 흔들리면 집중력이 떨어지고, 그렇게 되면 풀 수 있는 것도 못풀게 돼. 그러니까 항상 할 수 있다는 마음을 가지고 천천히 더 마음을 편하게 가져봐. 그럼 지금처럼 우리가 해왔던 대로 문제를 풀 수 있어."
어려운 문제라도 우리가 공부한 방식으로 천천히 한문제를 풀어보니 느끼는 게 있었나보다. 신우는 눈물을 닦으며 그 다음 문제도, 또 그 다음문제도 풀어나갔다. 그리고 마지막 문제를 풀고는 웃음을 지었다. 녀석... 문제는 난이도가 아니라 멘붕에서 왔음을 알아차렸던걸까? 힘겨웠던 넷째날이 지나, 다섯째날은 자신감을 키워줄 겸 전날보다 쉬운 문제를 내주었다. 신우는 정확하게 문제를 풀고 잠자리에 들었다. 독일에서 유치원을 나왔더라고 하더라도 독일어가 그리 쉽지는 않다. 눈물을 닦아가며 처절하게 해야 그나마 뒤떨어지지 않고 따라간다.
대망의 시험날이 다가왔다. 저녁식사를 하며 신우에게 시험이 어땠는지 살짝 물어보았다.
"시험은 아빠랑 준비했던 것보다 더 긴 지문, 더 많은 문제가 나와서 어렵게 느껴졌어. 우리가 풀었던 어려운 문제보다 더 어려웠던 것 같아. 그래서 사실대로 말하면 문제를 보자마자 또 눈물이 나오려고 했거든? 근데 그 때 눈을 감고, 멘붕안오게 숨쉬고 다시 보니까 하나씩 풀 수 있었어. 시간이 좀 모자라서 못푼 문제가 아쉽긴 하지만 말이야. 아빠 그거 알아? 문제풀면서 어떤 애들은 나는 도저히 못하겠다 라고 말하면서 한거?"
나는 이런 아들이 대견했다. 독일어 단어 몇 일 외운다고, 시험준비 몇 일 깔짝했다고 독일어 성적이 4점에서 1점으로 되길 바라진 않는다. 다만 어려운 상황이 와도 멘탈관리를 하면서 천천히 해내가는 너의 모습이 감동이었고, 대단하다고 느껴졌다.
아들아, 인생은 다른게 중요한 게 아니야. 멘탈이 전부란다. 아부지도 멘탈 부여잡고 계속해볼께.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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