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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아이는 독일 초등학교 3학년이다. 부담없이 보던 시험이 이젠 점수와 성적표로 나오고, 과제도 많아졌다. 물론 한국 아이들에 비해 널널한 것은 사실이지만 하루하루 내가 독일로 오기전에 어렴풋이 생각했던 "자유롭고 스트레스 없는 독일 교육"과는 다른 점을 피부로 느끼고있다. 어쨌든 이곳도 김나지움(인문계)과 레알슐레(실업계)로 갈리는 것은 성적과 학습태도이고, (등수는 매겨지지 않지만) 시험성적으로 아이들 스스로 이미 내가 반에서 어느정도 위치에 있는지 알고있다. 또 어떤 부모는 음악, 스포츠 뿐만아니라 공부도 열렬히 시키기도 한다.

신우는 한국어가 모국어로 잡힌 상태에서 독일로 왔고, 독일 유치원을 졸업해 지금은 독일 현지 학교에 다니고 있는데도 여전히 독일어를 어려워한다.(한국에 살다가 독일학교 갑자기 전학온 아이들 정말 리스펙...) 이번에 아이가 새로 받아온 과제는 Buchpräsentation(자신이 읽은 책 발표)였다. 나름 PT자료를 손수 준비하고, 무슨 내용으로 어떻게 발표할지 순서도 짜고, 무엇보다 친구들 앞에서 자신있게 말해야한다. 아이는 몇 몇 아이들이 발표하는 모습을 이미 지켜봤고, 자기도 그렇게 할 수 있을까라는 걱정과 스트레스가 되었는지 어느 날은 잠자리에 누워 잘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며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그 모습이 참 안쓰러웠지만, 그런 약한 모습이 보기 싫었던 나(ISTJ)는 형식적인 공감과 함께 또 다른 말을 해주었다.

"(형식적으로)신우가 발표 걱정이 많았구나. 근데 걱정된다는 건, 네가 아직 제대로 준비하지 않았기 때문이야.(촌철살인)"

ISTJ답게 공감이라고는 1도 없는 차가운 아빠의 반응에 신우가 울며 물었다.

"그럼 지금 다시 거실로 가서 조금 준비하고 자도 돼?"
"당연하지!"

자야할 시간에 거실에서 아이와 나는 토론을 했다. 이렇게도 생각해보고, 저렇게도 생각해보고... 그런데 무엇보다 녀석의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일단 "나는 잘 할 수 없을 것 같아"라는 부정적인 생각이 가득해서 이 생각부터 개조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신우야, 너 잘할 수 있어?"
"(자신없는 말투로) 노력해볼게."
"노력해 볼게라는 대답에는 노력해보겠지만 잘못할 수 있다 라는 의미가 들어있어. 다시 물을게, 너 잘할 수 있어?"
"잘 모르겠어... 내가 다른 친구들처럼 잘할 수 있을지..."

김정일이 모가지 따오겠다며 서해 최북단 백령도를 굴러다녔던 해병대 출신 아부지는 이 썪어빠진 정신력을 가만히 두고 볼 수 없었다.

"신우야, 아빠가 신우라면... 아빠 머릿속에 잘할 수 있을까 없을까라는 고민 자체를 하지 않을 것 같아."
"그러면...?"
"아빠는 그냥 다른 생각하지 않고, 나는 잘할거야! 나는 발표잘 할 수 있어! 이렇게 생각할 것 같아."
"그래도 솔직히 걱정될거아니야?"
"물론... 마음 한편으로는 걱정되겠지. 근데 그냥 그런 마음을 모른척 하고, 나는 그냥 잘할 수 있다라고 생각하는거야. 그러면 어떤 생각이 드는 줄 알아?"
"아니 몰라... 어떤 생각이 드는데?"
"나는 일단 그냥 무조건 잘할건데, 근데 잘하려면 내가 뭘 해야하지? 라는 생각이 들어. 그렇지 않겠어?"
"응. 생각해보니 그렇네..."
"근데 계속 잘할거라는 생각을 계속해도... 혹~시나 잘 못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스믈스믈 올라오거든? 그럼 그냥 무시해. 왜? 난 그냥 무조건 잘할거니까!!"
"응! 알겠어!"
"그럼 다시 물어볼게. 신우야, 너 프리젠테이션 잘할 수 있어?"
"응! 나 잘할꺼야. 잘할 수 있어!"
"그거야. 넌 그냥 무조건 잘한다고 생각하는거야. 네 스스로 널 믿어줘야 돼, 알았지?"
"응! 나 무조건 잘할거야!"

이렇게 아이의 정신부터 개조시켜놓고 나니 아이가 더 적극적으로 준비하기 시작했다. 신우는 나름 발표준비를 하고나서 엄마 아빠 앞에서도 모의 발표도 했다. 아이패드로 자기가 발표하는 모습도 찍고, 다시 보고... 신우가 생각했을 때 부족해 보이는 걸 체크해서 다시 발표하고, 녹화하고... 다시 보고. 그리고 발표 당일 아침에도 일찍 일어나 혼자 발표연습을 하고 자신감을 가득안고 학교로 출발했다.

"아빠, 나 진짜 잘할 수 있을 것 같아!"

결과에 상관없이 이 정도면 됐다. 왜? 넌 무조건 잘할거니까!

아빠가 40년 가까이 살아보니 사람들은 다 고만고만한 것 같아. 결국 중요한 건 다른게 아니고 마인드와 정신력이더라고. 지금 네 모습이 가끔 초라하고 보잘 것 없이 느껴지더라도 네가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달라지는거야. 그러니까 우리 앞으로도 화이팅하자! 아빠도 더 화이팅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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