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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108. 직장동료의 부탁

category 독일생활기록/독일 일상 2020. 7. 20. 05:58

2주 전인가, 3주 전인가 직장동료 S에게 연락이 왔다. 이 친구는 우리 둘째가 태어날 때즈음, 고맙게도 많은 육아 용품을 물려준 친구다. 이란 출신이지만, 이란에 산 시간보다 독일에 산 시간이 훨씬 길어서 정말 독일어를 정말 잘한다. 어쨌든 이 친구가 전화로 나에게 부탁을 하나 했다.

"혹시 나에게 3D 프로그램 사용법 좀 알려줄 수 있어?"

이 친구가 말하는 3D 프로그램은 한국에서 건축학과에 입학하면 모두가 쓴다는 스케치업이다. 워낙 간단한 인터페이스에 배우가 쉬운 프로그램이라... 다른 친구였다면, 그냥 유튜브보고 튜토리얼 따라하면 된다고 말했을거다. 그래도 회사 동료중에서 우리 가족과 가장 가까운 친구여서 망설이 없이 약속을 잡았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이직 생각(?)이 있는 것 같았다. 하긴, 이 친구의 건축 경력이 10년이 넘는데... Teilzeit로 일한다는 이유로 건축설계 일 보다는 인사팀 비스무리한 업무를 억지로 맡아서 한지 1년이 넘은 것 같다. 1년 전 쯤, 그 업무를 맡기 싫다고 팀매니저랑 사장이랑 울면서 회의했었다. "난 건축가라구요!!!!!! Ich bin architektin!!!!!!!!!!" 라며 울면서 호소했지만 소용이 없었다.(내 자리가 회의실 바로 옆이라 다 들렸음) 그리고 그 업무가 지금까지 이어지니 이 회사를 다니는 게 맞는지 고민을 많이 했을 것이다.

각설하고 첫째 아이와 함께 이 친구네 집에 다녀왔다. 우리 아이가 이 친구의 아들 마틴을 매우 좋아한다. 곧 김나지움에 입학을 하는 마틴도 우리 아이를 많이 배려해주며 놀아주는 편이라, 내가 뭘 하든 마음이 놓이기도 한다.

 

이 친구네 거실은 정말 맘에드는 공간이다

 

본격적으로 스케치업을 알려주었는데, 단축키로 이것저것 하니까 막 신기한듯한 눈빛으로 쳐다보며 연신 Wahnsinn(대박)을 외쳐단다. 이거... 한국에선 대학교 1학년도 하는건데... -_-? 혹시 이 글을 읽으시는 분이라면, 독일의 건축가들이 얼마나 허접한 개인능력을 갖고 있는지 짐작이 갈 것 같다. 물론 실제 프로젝트에서는 프로그램을 다루는 능력보다 사고 능력과 커뮤니케이션 능력이 훨씬 더 필요하지만, 그래도 최소한 머릿속에 있는 걸 무슨 툴을 써서라도 표현할 줄 알아야 한다는 생각을 가진 나로서는 좀 그르타.(시대가 어느땐데... 4차 산업시대 아니여? 응?) 그럼에도 건물이 잘도 올라가는 거 보면 이 산업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가끔은 신기할 정도.

두 시간정도 독일어로 떠들다보니 더 이상 정말 설명할 게 없어서 마무리했다. ㅎㅎㅎ 그 사이 마틴과 첫째 아이 신우는 동네 놀이터가서 신나게 놀고 있어서 데리러 갔다.

 

집에 갈 시간이다~

 

정말정말 신나게 놀았는지 땀이 범벅이 되어 나타난 신우. 마틴형과 헤어지기 싫어서 안아주고, 집에가기 싫어서 나무 뒤에 숨고 별 짓을 다했다ㅎㅎㅎㅎ 휴, 오늘도 알차고 힘차게 보낸 하루였다. 이 친구의 앞날이 어떻게 될 진 잘 모르겠지만, 독일어도 잘하고 워낙 경력이 있는 친구라서 걱정이 되진 않는다. 나중에 이직에 성공하면 그 이야기나 신나게 들어줘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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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EW J 2020.07.21 20:45

    일하시는 분도 중간에 배우시는 모습이 멋지네요.. 기술은 날로날로 발전해가고,, 저는 아직 학생이지만, 저도 나이가 들겠죠...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는 용기와 열린 마음,,, 꼭 기억해야겠습니다..!

    친구에게 가르쳐주시는 글쓴님도 멋지구요!

    • BlogIcon 도이치아재 2020.07.24 06:09 신고

      나이가 들어서도 뭐든 배우는 자세는 중요한 것 같습니다. 그 친구 나이가 40이 넘었는데, 한참 어린 저에게 서스럼 없이 그런 부탁을 하는 걸 보면 대단한 것 같아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