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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일 오전, 병원에 입원 후 진통 강도는 점점 심해졌으나 진통 간격은 6~7분 사이로 그대로였다. 나는 와이프 옆에서 그냥 같이 심호흡 해주고, 물이나 좀 먹여주는게 전부였다. 방에서 진통을 견디다가... 걷는 게 좋겠다 싶어 산책을 나갔다. 날씨가 생각보다 추워 밖으로는 못나가고, 병원 홀과 복도를 왔다갔다 하며 근근히 고통을 견뎌나갔다.

28일 오후 5시 쯤 되었을까. 진통 간격이 5분 내외로 일정하게 왔다. 병실에서 바로 분만실로 연락을 하여, 태동검사와 내진을 한번 더 받았다. 이 때 와이프의 정신적, 육체적 고통이 극에 달했다. 진통이 일정하게 오는데도 불구하고, 태동 검사 그래프 상으로는 (태동검사기를 배에 잘못붙였는지, 뭐가 어떻게 된건지) 그래프가 일정해 보이지 않았다. 헤바메(산파)들은 이 그래프를 보고 분만실로 이동할지 말지 결정을 한다. 그런데 그래프가 일정하지 않으니 다시 병실로 돌아가야 했었다. 와이프는 진통도 진통이지만, 태동검사기에 그래프가 제대로 그려지지 않으니 그게 많이 억울했나보다. 결국 내진도 못받고 병실로 돌아오는 길에 눈물을 보이고 말았다. 와이프는 아파 죽겠는데, 태동검사기는 진통대로 나타나질 않으니... 헤바메(산파) 입장에서는 마치 와이프가 꾀병부리는 꼴이 되어버린 것이다. 우리 와이프는 성격상 조금이라도 억울한 일은 절대 그냥 넘기지 않는다. ㅎ

"난 진짜 진통을 느끼고 있는데, 억울해... ㅜㅜ"

그렇게 복도에 서서 한참을 아픔의 눈물이 아닌... 억울함의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그 이후 와이프는 병원의 태동검사기를 불신하기 시작했다. ㅋㅋㅋ

"태동검사기 따위 하지 않을꺼야!"

와이프는 단호한 말투로 나에게 말했는데... 현대 의학기기를 불신한다는 말에 그 모습이 귀엽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하고... 뭐 그랬다. 병실로 돌아가다가 다시 분만실로 돌아가 헤바메를 결국 불러내었고, 내진이라도 해달라고 요청했다. 

"자궁이 4cm 열렸네요. 오늘 저녁안으로 나올 것 같아요."

오후 동안 진통을 겪으면서 자궁문이 1cm에서 4cm까지 열린 것이다. 병실로 다시 돌아와서 얼마나 시간이 갔는지도 모르게... 와이프와 계속 심호흡을 했다. 진통은 점점 더 심해졌고, 간격은 줄어들어들어 무통주사라도 놔달라고 할 생각으로 분만실 벨을 다시 눌렀다. 산파는 우리를 검사실이 아닌, 분만실로 안내 했다. 분만실에도 태동검사기가 있어서 다시 검사를 하는 찰라... 태동검사기를 불신(?)하는 와이프가 힘겹게 산파에게 말했다.

"PDA(무통주사) 좀 놔주세요...."
"알겠어요. PDA(무통주사)를 맞을 수 있는지 한번 더 상태를 보고, 무통주사를 진행합시다."

검사를 하던 헤바메(산파)가 갑자기 흠칫 놀랐다.

"PDA 안되겠어요. 아기가 지금 나올 것 같아요. Frau Lee 힘 한번 줘보세요! 힘껏 밀어보세요!"

와이프가 분만실로 들어오기 전, 화장실에서 동글동글한 풍선같은게 만져진다고 했는데... 그게 바로 양막(양수 주머니)이었다. 출산 의자에 앉자마자 바로 양수가 터졌고, 분만이 시작된 상황이었다. 그러니까... 와이프는 무통주사 없이 쌩 진통을 고스란히 견디고 있었던 것이다. ㅜㅜ

"자 머리 나왔어요. 짧고 빠르게 호흡해봐요. 흡흡흡흡. 자 다시 힘주세요! 잘하고 있어요"

독일어 칭찬세례와 함께 본격적인 분만이 시작되고 10~15분 정도 지났을까. 드디어 둘째가 밖으로 나와 힘차게 울기시작했다. 내 눈에서도 눈물이 터졌다. 첫째가 세상에 나왔을 때도 눈물이 났고, 둘째가 나왔을 때도 눈물이 났는데... 느낌이 달랐다. 첫째 때는 새 생명을 보고 감동받아 흘린 눈물이었다면, 둘째 때는 극한의 고통을 다 견뎌내고 순산한 와이프가 너무나도 대견스럽고, 이 고통을 지켜볼 수 밖에 없었던 미안함에서 나는 눈물이었다.

3.28kg으로 세상에 나온 둘째. 신아.

"지금 사진이나 동영상 찍어도 되나요?"
"물론이죠. 찍어요."

첫째 때는 출산 직후, (내 손에 사진기가 들려져 있음에도...) 처음느끼는 감동의 도가니가 너무 생소해 바보같이 촬영하는 걸 깜빡했었다. 당시엔 그 감동의 상황속에 아주 젖어있었다.ㅋㅋㅋ 하지만 이번에는 까먹지 않고 많은 사진을 남겼다. 뱃속의 아이와 만나는 순간은 인간이 경험할 수 있는 최고의 순간이 아닐까.

둘째를 낳고도 여전히 소녀같은 우리 와이프

둘째는 태어나자마자 엄마 품으로 안겼고, 나는 탯줄을 잘랐다.

"Frau Lee, 정말 잘했어요. Frau Lee 저녁 안먹었죠? 먹을 거라도 갖다줄까요?"

산파는 독일어로 다시 한번 칭찬 세례를 쏟아부었고, 와이프의 얼굴에도 그제서야 미소가 돌기 시작했다.

한국과 다른 점이 있다면, 출산 후에도 아기와 꽤 오랜 시간을 분만실에서 보낸다. 우리의 경우, 출산직후 와이프가 영양제를 맞으면서 식사(빵과 요거트지만...)도 했다. 그 사이 산파와 의사는 아이가 건강한지, 키는 어느정도인지, 몸무게는 어느 정도인지 체크한다. 아이를 낳고 거의 두 시간을 분만실에서 머문 후, 드디어 병실에 아이와 입성했다.

신아야. 정말 반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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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20.01.03 18:39

    비밀댓글입니다

  2. 밤익는냄새 2020.01.09 17:39

    크흑... 읽는데 저까지 울컥... 정말 감동적이네요. 순산과 새생명 너무너무 축하드려요. 신생아와 함께하는 소중한 시간 되시길 바랄게요!^^

  3. 2020.01.09 20:54

    비밀댓글입니다

  4. Jay 2020.01.11 18:12

    정말 축하드립니다!

  5. 하하 2020.02.20 01:36

    순산 축하드려요! 블로그 잘 보고있습니다 :)